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말글에 관한 고민은 유치원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저절로 생깁니다. 엄마, 아빠, 고기, 밥…… 어쩌고 하다가, 느닷없이 소방수, 자동차 같은 말이 나타납니다. 이 두 말 사이에 있는 계단을 뛰어오를 때 아이들의 첫 번째 천재성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버스, 아이스크림 같은 이상한 말들이 또 나타납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전에 모두 세 가지 언어가 있다는 기억을 잠재의식 속에서 상처로 기억합니다.

우리 말을 누구의 시각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이 모든 문제의 바탕에 깔렸습니다. 소리 언어인 우리 말을 소리 대로 적어야 하느냐 원형을 밝혀 적어야 하는 문제부터 논쟁의 시작이 되었고, 그것은 지금껏 이어져 오는 중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쓰는 말의 법칙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여 국립국어원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우리 말의 주인들 스스로 말에게 왕따 당하는 현실을 말해줍니다.

이미 있던 시각을 버리고 새로운 눈으로 말글의 세계를 열어준 앞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시경을 비롯하여 한글학자들은, 일제 강점기 하에서 우리 말을 지키는 데 목숨까지 바쳤지만, 문법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우리 말을 그 말의 주인인 백성들로부터 고립시키는 부작용을 낳았고, 그 부작용은 오늘날 학교 문법 교육에서 철저하게 아이들을 고문하고 있는 중입니다. 학생들에게 문법이라먼 치가 떨리는 기억 뿐입니다. 이런 고통을 맞은 저에게 위로를 해준 사람이 양주동과 이오덕이었습니다. 양주동의 ‘고가 연구’와 이오덕의 ‘우리 말 바로쓰기’가 좋았습니다. 특히 이오덕은 지금 쓰는 우리말에 대한 생각을 잘 풀이어놔서 쓰기에도 좋았습니다. 입말 중심의 우리말 살리기 운동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덕주의자가 됐고, 저도 거기에 합류하였습니다. 아마도 우리 말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오덕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도권에서는 어쨌는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이오덕 선생의 작업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영향을 받은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윤구병이 그 사람입니다. 우리가 궁금하게 여기는 몇 가지 말을 통해서 우리 말의 어원에 대한 책을 냈습니다. 전문서라기보다는 어원과 우리 말에 대한 고민을 스케치한 책인데, 읽어보면 자못 생각이 복잡해지는 책입니다. 내용이 복잡한 게 아니라, 우리 말 글에 숨어있는 문제점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국어교육과를 나왔고, 평생 글을 썼으며, 어원에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책입니다. 내용의 풍부함 때문이 아니라 말을 바라보는 우리 시대의 무감각에 대한 반성이 저절로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천지창조 신화가 없는데, 단군신화를 동물 토템으로 해석한 최남선을 비판하면서 창조신화로 해석한 것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곰과 범을 각기 하늘과 밤으로 풀어서 우주가 열리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환인과 환웅의 지상 출현으로, 하늘의 질서가 잡힌 것을 말합니다. 쑥(예)과 마늘은 남쪽에서 뜨는 해를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그러니 남쪽에서 밝은 해가 떠오르자 어두운 밤(범)이 사라지고, 푸른 하늘(감)이 드러났음을 이야기로 표현한 것입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