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권의 애장품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2018년도 나의 행적이 담긴 일기장이다. 한권 한권이 나의 발자취가 돼 진열되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늘어나고 허전해지는 빈자리에 메워지고 있다.

한 해가 시작되면 새로 마련한 일기장에 하루를 마치며 기록을 한다. 그게 엊그제 시작된 일인 것 같은데 벌써 한권을 다 채우고 마지막장을 써내려가고 있다. 기나긴 시간이었지만 한권의 일기장에 일 년이 기록되고 저장된다.

가족들이 살아온 모습과 일가친척들의 크고 작은 행사, 이웃과 우리 지역사회의 사건 사고의 생생한 모습들이 적혀 있다. 기쁜 일 슬픈 일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 잊고 싶은 일들 모두 기록돼 간직하고 있다.

그중 우리 가족 모두를 놀라게 했던 가장 큰 사건은 작은아버지의 충격적인 소식을 기록한 것이다.

추위가 물러서고 여행가기 좋은 계절이 찾아왔다. 아내와 일철이 들어서기 전에 여행을 다녀오려고 계획을 세우고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이때 시흥에 살고 있는 사촌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가 심장질환으로 병원에 후송돼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했다. 의사선생님이 며칠을 넘기지 못할 것 같으니 얼굴 볼 사람들은 내일까지 다녀가라 연락하라 해서 전화했다고 말하면서 흐느꼈다.

여행계획을 취소하고 아내와 급히 상경하여 병원에 갔다. 면회 시간이 돼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나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듣기라도 한 듯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나도 순간 눈물이 핑 돌며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이것이 마지막인가. 허망하기만 했다.

면회 시간을 마치고 더 머무를 수 없어 작은어머니와 동생들을 위로해주고 집으로 내려왔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어 전화를 해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우리가 다녀간 후 급격히 병이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겨 식사도 하시고 화장실 출입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사선생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보았다며 연구 대상이라 말씀하셨다고 한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기뻤던 날이 더 많았지만 아픔이 먼저 떠오른다.

5월의 어느 날 91세의 장인어른을 모시고 봄꽃축제를 다녀온 이야기도 기억 속에 떠오른다. 바닷가에서 세상을 밝히는 수선화에 묻혀 환한 미소를 지으시던 모습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휠체어로 이동하며 연신 사진 촬영을 하신다. 꽃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다가 환히 보이는 횟집에서 즐긴 회와 매운탕의 여운이 아직까지도 입안에 맴돌고 있는 듯하다.

일 년 동안 나의 생활 모습이 담겨진 소중한 재산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롭게 다가오는 한해의 계획을 세워본다. 잘한 일은 더 잘할 수 있게 잘못된 일은 두번 다시 실수하지 않게 계획하고 준비한다.

이제 해가 기운다. 한 해의 모든 일들을 짊어지고 힘들게 넘어간다. 달이 마중 나와 해를 이어받아 떠오른다. 내년에 다시 떠오르는 희망찬 태양에게 이어주기 위함이다.

하루의 기록은 내가 걸어온 행적이다. 하루, 한 달, 일 년을 기록으로 이어주는 역사의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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