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대주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구먼.”

김상만 양평 임방주가 말했다.

지금의 북진본방이나 임방으로는 인근 장사 정도는 몰라도 경강상인들이나 원거리 장사꾼들까지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김상만은 젊어서부터 뗏목꾼으로 남한강을 따라 한양을 수없이 오고갔던 터라 도성의 큰 시전들을 보았던 터였다. 그런 시전들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규모가 대단해 담장 안에서도 길을 잃을 정도로 집채들이 늘느리로 차있었고, 장사꾼들이 자는 객방과 그들이 몰고 온 마소들을 먹이고 재우는 마굿간도 수십 칸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장사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쳐도 숙식을 하는 데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사시사철 어느 때고 팔도 장사꾼들이 자신들 고을에서 나는 산물들을 가지고 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전의 큰 상인들은 팔도의 물산 산지마다 상전을 차려놓고 수시로 지역의 특산물들을 받아 한양 장마당에 내놓고 팔았다. 시전 전포처럼 직접적으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시전에서 객방을 차려놓아 장사꾼들이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할 수 있으니 장사꾼들이 마음 편히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네. 지금 본방 규모나 임방으로는 절대 청풍도가를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왜 모르겠나. 그러나 대주, 본방을 지으려면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큰 돈이 들어갈 텐데 그걸 걱정하는 게지. 더구나 지금 본방에 산적한 문제들이 여간 많은가?”

박한달 연론 임방주가 본방을 증축하는 것보다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힘쓸 때가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임방주님들, 우선 당면한 청풍도가 문제부터 해결을 해야겠지요. 그리고 본방 확장하는 문제는 그 다음에 할 작정입니다. 훼방 놓고 있는 청풍도가 문제는 어찌해야 좋을까요?”

최풍원이 임방주들의 의견을 물었다.

“우리 학현 임방 코가 석 자나 빠졌으니 가타부타 어떻게 해보겠단 소리도 못 하겠구먼!”

배창령 학현 임방주가 모처럼 입을 뗐다.

“우리 교리도 마찬가지구먼. 그래도 올해는 대주 덕분에 봄나물을 뜯어 공납한 덕에 집집마다 곡물자루라도 생겨 모진 배곯기는 면했지만, 남 생각할 여력은 전혀 없구먼! 대주 도움은 받고 도와줄 수는 없으니 미안하기만 하구먼!”

신덕기 교리 임방주가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그건 여기 모인 임방주들이 모두 한 마음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모두들 똑같이 힘에 겨우니 남 돌아볼 겨를이 있겠는가?”

연론 박한달 임방주가 신덕기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래도 사람이 남 덕을 봤으면 은혜를 갚는 것이 당연한데 얻어먹기만 하고 보답을 하지 못하니 도무지 면이 서지를 않는구만.”

“임방주님들 마음은 저도 잘 압니다. 그러니 그런 것은 괘념치 마시고 청풍도가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좋은 의견들을 말씀해 주시지요?”

“좋은 의견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문제는 그 놈들 족쇄에서 벗어나는 길인데 그러려면 그놈들한테 진 빚을 갚아야 될 터인데, 지금 마을 사람들이 그럴 형편이 되는가?”

“교리 임방주도 말했지만, 허기도 겨우 면한 처지에 무슨 수로 빚을 갚을 수 있겠는가? 우리 마을은 청풍도가 빚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빌려다 먹은 남 빚을 갚느라 이번에 공납하고 받아간 쌀도 태반은 그리로 갔다네.”

배창령 학현 임방주가 자신의 마을 사람들 형편을 알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한양에 공납품을 바치고 각 임방별로 받아간 곡물들도 태반은 청풍도가나 부자들에게 진 빚을 갚느라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하고 그리로 흘러들어 갔는가보다. 이런 상태라면 마을 사람들이 진 빚을 갚지 않는 한 앞으로도 매양 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될 터였다. 그렇게 되면 북진본방으로서는 공염불만 하는 셈이었다.

물산들을 팔아다 각 임방에 나눠주고, 임방에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 물건들은 다시 청풍도가나 부자들 곳간으로 들어갈 것이었다.

그 고리를 끊어버리지 않는 한 마을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북진본방도 장사를 키워나갈 수 없었다. 커지기는커녕 크기도 전에 십중팔구는 말라죽기 십상이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무슨 방법이고 찾아야했지만, 각 임방주들 말처럼 백 말이 소용없고 돈이 앞장 서야 해결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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