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전쟁은 약소국가가 발발할 수 없다. 약한 사람이 먼저 싸움을 거는 경우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강한 자가 자신의 지위를 더 높게 하기 위해서 또는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공격하는 것이 전쟁이다. 그러니 싸움이나 전쟁이나 사전에 강하고 약한 것을 알게 되면 승부가 분명해진다. 약소국가는 자신들이 아무리 중무장을 해도 강대국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그 저항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냐에 따라 승패가 다소 달라질 수는 있다. 그 때문에 이전에 베트남이나 현재의 중동사태를 보면 게릴라 유격전을 펼치거나 테러리스트로 끈질기게 대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정해진 규칙이 없다. 싸워서 무조건 이기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얼마든지 세계 여러 나라의 비난을 받더라도 적의 군인이 아닌 민간인을 희생하는 일이 허다한 것이다. 

기원전 769년 춘추시대, 정(鄭)나라 환공이 회나라를 공격하고자 계략을 세웠다. 침공에 앞서 회나라의 영웅호걸, 충신, 명장, 지혜로운 자, 용감한 자들의 명단을 작성했다. 그리고 환공은 대외에 천명했다.

“이 명단에 들어있는 자들은 우리가 회나라를 정복하면 반드시 많은 땅과 높은 벼슬을 받을 자들이다!”

그런 다음 회나라 국경 인근에 제단을 차려놓고 크게 제사를 올렸다. 작성한 명단을 불에 태워 땅에 묻은 뒤, 닭과 돼지의 피를 바쳐 하늘을 우러러 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노라고 맹세했다. 환공은 그렇게 제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멀리서 이 광경을 줄곧 지켜보던 회나라 병사들이 다가와 남은 잔해를 뒤적였다. 그 가운데 뜻밖에도 아직 타지 않은 문서가 발견됐다. 거기에는 분명하게 명단이 적혀있었다. 이 소식은 곧바로 회나라 왕에게 전해졌다. 회나라 왕은 보고를 받고 크게 진노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이는 모두가 정나라의 일방적인 모함이라고 아뢰었다. 왕은 그래도 듣지 않았다. 도무지 신하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명단에 있는 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려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당장 명을 내렸다.

“이 명단에 들어있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라!”

한 순간 나라 안의 인재들이 모두 참수되고 말았다. 그러자 회나라에는 성을 지킬 장수가 없었다. 정나라 환공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군대를 몰고 쳐들어와 공격을 개시했다.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환공은 자신의 병사 단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손쉽게 회나라를 점령하였다. 이는 ‘춘추좌씨전’에 있는 이야기이다.

차풍사선(借風使船)이란 바람을 빌려 배를 빨리 달리게 한다는 뜻이다. 주로 남의 힘을 빌려 제 이익을 꾀할 경우를 빗대어 말한다. 계략은 큰 뜻을 품고 멀리 내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지고, 지혜는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고 했다. 소인배은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으니 마음은 편안할지 모르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군자는 남의 손을 빌리고, 남의 머리를 빌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큰 기업을 경영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자신의 처지가 여전히 비굴하고 가난하다면 대가리를 한 번 돌기둥에 박아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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