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도 소작인은 아무소리도 못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빚을 진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살림살이 형편이 다 고만고만하니 그런 사정은 집집마다 마찬가지였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한두 마을도 아니고 청풍 관내 모든 집들이 그러할테니 북진본방에서 감당할 수 있는 그럴 빚이 아니었다. 북진본방에 모인 각 임방주들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청풍도가에 진 빚을 청산하지 않고는 마을사람들이 자유로워질 수 없고, 그렇게 되면 팔 물건이 생겨도 족족 청풍도가로 빼앗길 테니 북진본방으로 들어올 것이 없었다. 해결할 방법은 분명한데, 해결할 길이 막막했다. 참으로 답답한 지경이었다.

“일단 우리 임방 관할의 마을에서 지고 있는 빚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부터 조사를 해보고 갚든 말든 방법은 후에 찾아보세!”

“단리 임방주 말처럼 그게 일의 순서일 듯싶네!”

김상만 양평 임방주도 복석근 임방주 의견에 동의했다.

“그럼 동몽회를 몽땅 풀어 각 마을로 보내 조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풍원이 도식이를 불러 임방주들의 의견을 말하고 즉시 아이들을 보내 임방이 있는 각 마을에서 청풍도가에 지고 있는 빚을 알아올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북진본방에 모인 임방주들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과 타개책 논의를 계속해나갔다.

“임방주님들, 이번에 한양에 올라가보니 우리 본방도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는 없을 것 같소. 더구나 강 건너에서는 청풍도가가 언제라도 우리를 거꾸러뜨리려고 수를 부리고 있는데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를 타개할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존립 자체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대주는 무슨 묘안이 있는가?”

김상만 양평 임방주가 물었다.

“북진본방의 규모를 지금보다 키우면 어떨까 합니다.”

최풍원은 한양 삼개나루의 여각을 염두에 두고 임방주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본방을 넓힌다고 거기서 돈이 나오는가, 밥이 나오는가. 가뜩이나 어려운데 집 짓느라 돈을 들이면 더 어려워지지 않겠는가?”

신덕기 교리 임방주였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번에 한양에 올라가보니 나가서 하는 장사도 좋지만 장사꾼들이 내 집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장사가 더 중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 북진만 해도 경강선과 경강상인들이 좀 들어왔을 뿐인데 잘 곳도 먹을 곳도 변변찮으니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타지에서 오는 장사꾼들이 편하게 잠자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그런 객방과 짐을 보관하고 마소도 먹일 수 있는 그런 시설을 만들면 어떨까 합니다.”

“그렇게 번듯하게 만들어놨는데 장사꾼들이 오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요새 객방이 모자란 것이야 특별한 경우고 평상시는 지금 본방도 한적하지 않은가?”

박한달 연론 임방주도 최풍원의 의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난,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 그늘을 만들어주면 물고기는 모여들기 마련이지.”

김상만 양평 임방주가 박한달의 말끝에 토를 달고 나섰다.

“집을 짓겠다는 데 갑자기 물고기 얘기는 왜 하는가?”

“세상 이치는 한 가지 아니겠는가?”

“이치는 또 뭔가?”

점점 모를 소리에 박한달이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내가 한창 떼를 몰고 강을 누비며 다닐 때를 생각해 본 걸세. 한여름 땡볕에 강 복판에서 떼를 몰고가다보면 마빡이 벗어지지. 물 위에서 어디 그늘로 피할 곳도 없고 싣고 가던 나무가리에서 솔가지를 잘라 떼에 그늘막을 만들곤 했다네. 그러면 그늘 밑으로 물고기들이 새카맣게 몰려들었지.”

“물속에서도 더운가?”

“그러니까 물고기가 모이는 게 아니겠는가? 여하튼 물고기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들던지 손으로도 건질 정도였다네. 사람도 한 가지 아니겠는가? 편안하게 쉴 자리가 있으면 자연스레 모여들지 않겠는가?”

“사람이 물고기랑 같은가?”

“사람이라고 물고기와 다를 게 뭐 있겠는가?”

“집 짓는 얘기를 하다 웬 샛길이여!”

신덕기 교리 임방주가 허방으로 빠져가려는 이야기 줄거리를 바로 잡았다.

“청풍도가와의 문제가 해결되면 내일 당장이라도 시작할까 합니다!”

최풍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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