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득 경상대 명예교수

2007년 봄이었을 거라고 한다. 시인 박원희가 일하러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소재 한일시멘트 석산에 갔다. 그곳에서 시인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산은 볼품없이 무너져 있었다. 여기저기 발파석들이 굴러다니고 한쪽에서는 연신 돌을 실어 나르느라 분주했다. 천 미터나 되는 산들이 능선은 사라지고 평지나 다름없이 되어 버렸다. 푸르던 숲은 간 곳 없고 그 끝은 폐석이 쌓여 폐허가 되어 있었다. 쇠가죽을 벗기듯 암반이 드러나도록 산을 벗겨 내는 일을 현장 노동자들은 토피 작업이라고 한다. 토피 작업이 끝나면 발파 작업을 위해 드릴로 암반을 뚫고 화약을 장전하고 뇌관을 설치한다. 뇌관 설치가 끝나면 사람들이 피하고 발파를 한다. 발파가 시작되면 크고 작은 돌덩이와 뽀얀 먼지가 절규와 함성을 내지르며 수십 수백 미터 창공으로 산화되어 불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발파 현장에는 그런 굉음과 비산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발파 구간에 타이어 등으로 가공하여 만든 덮개를 씌워 놓았기 때문이다. 덮개에 부딪힌 돌들은 퍽퍽 우는 소리를 내며 무너앉고 마는 것이다.

1. 어떻게 죽을까 생각하다가

   저 산처럼 죽자 했다.

2. 구멍 뚫어 화약 한 움큼 집어넣고 펑펑 튄 후

   저 산처럼 없어지기로 했다.

3. 아무 데로나 돈 주는 곳이면 팔려 나가기로 했다.

4. 어떻게 살까 생각하다가

   저 산처럼 살자 했다.

5. 몸뚱이 하나 가릴 곳 없어

  잇몸 드러내고 사는 이빨처럼

  토피하고 뻐드렁니처럼 불거져

  모난 놈이 정 맞으니

  정이나 화약이나 맞으면서

  그렇게 살기로 했다.

  맞은들 아프기로 하면 떨어져 나간 토피만 할 것이며

  떨어져 나간들 반편이가 된 산만 할까 하면서 살기로 했다.

6. 오늘도 질퍽한 어둠이 오기 전

   발파가 한 번 더 왔다.

   먼지가 오르지 않는 신공법의 발파는

조용히 산을 낮추고

  버그덕 버그덕 장비가 오르고 있는

  상처투성이의 산속에서

  면벽승처럼 머리 들이박고

바위를 뚫고 있는 드릴의 이슬아슬한 곡예를

덜덜덜 덜덜 떨고 있는 것을 - 박원희, ‘석산에서’ 전문

시는 발파당한 바위산이 서정적 자아에 투사됨으로써 의인법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발파당한 산과 서정적 자아는 하나이다. 또한 시에서는 개체가 주체화됨으로써 가역적 변증법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생산 과정을 그리고 있으므로 유물론적 변증법이기도 하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여섯 도막을 말하기(discourse)로 풀어 본다. 1, 2, 3연의 기본 동사는 ‘죽는다’이고 4와 5의 기본 동사는 ‘산다’이며 6은, 나의 문학 용어로는 ‘온깨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용어로는 ‘전망’이다. 1도막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정적 자아는 산처럼 ‘죽는다’. 이는 2도막에서는 ‘없어진다’로, 3도막에서는 ‘팔려나간다’로 구체화된다. 서정적 자아가 산처럼 조악한 상품으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2에서 펑펑 튄 산이 3에서는 돈 주는 곳이면 아무 데나 팔려나가기로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4에서는 다시 산처럼 살기로 한다. 5에서는 정이나 화약이나 맞으면서 살기로 한다. 아픈들 떨어져 나간들 산만은 못할 것이라 하면서 살기로 한다. 6에서 서정적 자아는 면벽승처럼 머리 들이박고 살기로 하면서 온깨도에 이른다. 면벽승을 둘러싼 것은 존명이다.

오늘도 질퍽한 어둠이 오기 전 발파가 왔는데 그 발파로 인하여 뜯어지고 찢겨진 바위는 창공 드높이 굉음을 지르며 산화한 것이 아니라 우는 소리를 내며 무너앉는 것이다. 조용히 산을 낮춘 것뿐이다. 시는 신공법에 의해 조용히 산을 낮추듯이 인간의 가치를 소리 없이 낮추는 신경영법의 교활한 전술을 폭로하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다. 내몰리고 가위눌린, 으깨지고 터진 인간의 본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발파는 오늘도 내일도 반복되는 통증이다. 아픔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시지프스적이기도 하고 프로메테우스의 반복되는 고통이기도 하다. 산승은 버그덕 버그덕 장비가 오르고 있는 상처투성이의 산속에서 살고 있다. 또한 산승은 바위를 뚫는 드릴의 이슬아슬한 곡예 속에서 덜덜덜 떨며 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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