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뿐인 줄 아는가. 우리 동네에서는 빚을 갚기 전에는 죽지도 말라며, 젊은 놈이 환갑도 지난 노인 뺨따귀를 올려 부치고 억울하면 당장 도가로 빚을 가져오라며 망나니짓을 하고 갔다네!”

복석근 단리 임방주였다.

“그놈의 돈이 없으면 늙은이도 젊은 놈한테 봉변당하는 세상이 됐구만!”

“임방주님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요?”

“대주, 방법이라면 한 가지 밖에 더 있겠는가?”

“그게 뭡니까?”

“남의 것을 빌려먹었는데 빚을 갚고 벗어나는 것 말고는 달리 뭐가 있겠는가.”

“그야 그렇지만…….”

최풍원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제 필요하다고 남의 것을 먹었는데, 가장 말끔한 방법은 청풍도가에 진 빚을 갚는 것이었다. 그러나 빚을 진 사람도 사정이 있는 법이었다. 또 남의 빚을 갚지 못하는 딱한 연유도 있는 법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없어서 갚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장 먹을 것도 없어 굶고 있는 지경에 남의 빚을 갚을 여력이 있을 리 없었다. 고을민들이 그렇게 곤궁에 빠진 것은 가뭄이나 수해 같은 천재가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부자들과 소작인 간의 관계가 더 컸다. 부자들의 농토를 얻어 농사를 부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애당초 소작인들은 식량도 모자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실제로 일을 해 곡물을 생산하는 소작인보다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부자들의 몫이 배는 많았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거의 모든 땅을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땅을 부치겠다는 소작인들은 넘쳐났다. 땅주인이 배짱을 부리며 큰소리를 치는 이유였다. 소작료는 점점 치솟아 가을에 나락을 거둬들이고 일 년 품삯을 받아야 겨울도 지나기 전에 양식이 떨어져버렸다. 그래도 알곡으로 품삯을 주는 부자는 후한 축이었다. 어떤 모진 부자는 타작마당에 나와 지키고 섰다 탈곡이 끝나자마자 알곡은 몽땅 거둬가고 마당질을 하고 남은 덜 익은 쭉정이나 검불 속에 섞인 몇 낫 알갱이를 품삯이라고 주며 생색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소작인들은 찍소리 한 번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밉보여 소작도 부쳐 먹지 못할까 두려워서였다.

소작인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먹을 양식조차 턱없이 모자란 판에 빚을 갚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도 봄 여름 가을처럼 숲이 울울한 계절에는 산에라도 올라가면 뭐라도 캐고 따서 먹을 게 있으니 배는 곯지 않을 수 있었다.

문제는 한겨울과 잎이 돋기 전 초봄이었다. 이때는 온 산천이 얼어붙어 곡물이 떨어지면 꼼짝없이 굶을 수밖에 없었다. 굶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서너 날을 굶으면 견뎌낼 수가 없었다. 더구나 어린 자식들이 배가 고파 낮이고 밤이고 징징거리는 것은 눈을 뜨고 보기가 힘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넓적다리라도 베어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견디다 못해 부잣집 문턱을 넘어가면 귀살븐 온갖 소리를 다 들어야 했다. 작년 재작년에 가져간 양식은 언제 갚을 것이냐, 빚도 갚지 못하면서 무슨 낯짝으로 또 왔느냐, 저렇게 염치가 없으니 평생 빌어먹고만 산다느니, 얼마나 게으르면 가솔들 입도 끄스르지 못하느냐, 천성이 게으르니 그래 사는 거라느니, 이제 빌려가는 가는 것은 또 언제 갚을 거냐며 입 찬 소리를 했다. 그래도 집에서 칭얼거리고 있는 어린 것들을 떠올리며 견뎌야 했다. 그렇게 역겨움을 참고 어렵사리 빌린 곡물로도 온전한 해결이 되지 않았다. 해결은커녕 빌리는 순간부터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이 부자들 곡물이었다. 빌린 쌀은 매달 이자를 갚아야 했다. 그런데 그 이자는 이자가 아니었다. 그 이자는 소작인들 등골을 빼먹는 바구미에 부자들이 소작인들 코를 꼬이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주린 배를 견디고 견디다 못해 남의 곡물을 빌려먹는 처지에 매달 이자를 갚는다는 건 없는 손자 부랄 만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달이 지나도 이자를 갚지 못할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이자에 이자가 붙어 서너 달만 지나면 빌려먹은 곡물자루보다 이자 자루가 더 커지고 일 년이 지나면 몇 배로 불어나고 그것이 일 년 이년 지나면 수십 배로 불어났다. 그러니 아무리 일을 해도 본전은커녕 이자를 갚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부자들은 그런 소작인들의 약점을 이용해 자기들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이었다. 일 년 농사일을 부려먹고도 품삯을 제 맘대로 후려치고, 소작인집 아낙이나 나이 어린 자식들까지도 제 집 종 부리듯 불러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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