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오늘날 세계는 급속한 과학문명의 발달로 정신문화와 물질문화가 상충(相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도시화와 과학은 새로운 자본주의 세상을 열어 준 반면 환경파괴와 같은 자연재앙의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한다.

이처럼 도시의 고도성장과 산업화는 인간성이 상실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에 생존경쟁의 시대적 흐름에 잠시나마 잃었던 인간다운 성숙된 정신세계를 찾으려는 움직임에서 과학문명에 밀려 사멸위기에 몰렸던 인문학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알기 위해 ‘직지’의 원본이 소장되어 있는 프랑스의 대표 작가 생텍쥐페리가  지은 ‘‘어린왕자’는 동화가 아니다’와 세계기록유산 ‘직지’ 내용 속에 조주선사(趙州禪師)가 세 번 문답으로 제시한 “차나 한잔 들게(喫茶去)”라는 공안을 갑자기 물어보면 전문학자들도 선뜻 시원스럽게 답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4차 첨단산업혁명시대인 오늘날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느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모바일을 검색해 최소한의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인문학적 사고를 바라는 것일까?

이는 산업과학기술과 도시화로 급성장한 물질적 삶에서 벗어나 생존에 필요한 일과 정신적 삶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인간 본래의 욕구가 커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직지’에서 말하는 ‘자기 본래의 모습을 찾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무조건 남을 앞질러야 한다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추격자)에서 이것만이 인간의 삶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일어 이제는 백운 경한과 같은 수행자는 아닐지라도 남을 위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선도자)로 나서기도 하는 이 두 가지 전략을 아우르는 삶의 방식을 찾기 때문이다.

미국 주간지 포브스의 조지 앤더스 기자는 “하이테크 시대에 인문학의 진가는 모호하고 조잡한 데이터에서 의미를 찾고 상황을 예측하는 것”이라면서 4차 혁명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라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직지’의 내용 속에 숨어 있는 불립문자(不立文字:선종에서,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언어나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로 공안(公案:화두:이야기의 말머리)을 통해 돈오점수(頓悟漸修:문득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에 이르기까지에는 반드시 점진적 수행 단계가 따름을 이르는 말)함과 일치한다고 하겠다. 

‘직지’의 편자 백운의 중심 철학은 무심(無心:마음 없음) 사상으로 선종의 교지(敎旨)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최근 ‘직지’의 중심 사상을 이 시대가 낳은 최상의 철학이라고 외면적으로 표방하지만 내면에는 다른 의도가 내재된 이들이 있어 자성(自省)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애당초 ‘직지’에는 무관심했던 이들이 무심(無心)이 아닌 전심(錢心)과 권심(權心) 등 물욕(物慾)에 심안(心眼)이 흐려지고 있어 ‘직지’가 갖는 본래의 인문학적 가치가 낮아질까 자못 걱정된다.    

인문학은 휴식과 여유가 있을 때 사색과 성찰의 길로 안내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지혜의 창고이다. 이 시대 인문학 서적으로 손색이 없는 ‘직지’가 지닌 “자신을 바로 가리키는” 마음의 지침서로서 교양을 쌓을 수 있다면, 모든 영역에서 부족했던 지식을 찾아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좋은 보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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