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침은 참 추웠다. 새해 세 번째 산행의 목적지였던 단양의 소백산은 하얀 서리꽃과 눈꽃, 투명한 얼음으로 우리를 맞았다. 눈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활공은 눈부셨다. 겨울 산중에서 웅비하는 생명과 조우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꽁꽁 얼어붙은 사위는 적요함마저 감돌게 했다. 얼음 밑에서 숨죽여 조잘대는 물소리가 상념에 젖게 했다. 얼마 전 세상을 등진 주성대학 윤석용 이사장이 떠올랐다. 왜 죽었을까. 3년 전쯤 나는 고인과 아프리카의 몇 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의 정열적인 말과 몸짓은 언제나 감동적이었다. 죽음으로 내몰린 사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세상을 정리해야 할 정도의 어떤 절박함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의 가장 큰 고민이 대학 활성화였다는 사실 정도만 알뿐이다.

새로운 조건 창출해야

대한민국 지방대학의 현주소는 한마디로 ‘3무’로 집약된다. 학생이 없고, 인재가 부족하고, 재정도 열악하다. 악순환의 3박자를 모두 갖춘 구조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수도권과 사회·문화의 인프라 차이, 지방인재의 서울 집중, 지방대 출신의 취업기회 차별 등은 지금도 지방대학 위축을 부추기고 있다. 결국 지방대학 진학 수요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왔다.

현재대로라면 감소하는 입학생들로 많은 대학들이 문을 닫게 된다. 과감한 구조개혁만이 지방대학을 살아남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됐다. 개혁에 인색한 대학은 상대적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지방대학에는 개혁의지를 갖춘 리더가 절실하다. 우유부단한 리더는 현상유지도 못한 채 대학을 퇴보시킬 수밖에 없다. 윤 이사장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이유도 여기 있다. 그는 창학이후 이사장과 학장을 번갈아 맡아가며 학교를 이끌었다. 학교가 어려움에 닥칠 때마다 내공을 써 위기탈출에 성공했다. 스스로 창출한 아이디어는 늘 새로웠다. 교도소내 강좌 개설은 재소자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다시 창조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중국까지 날아가 입학생을 모집, 난국을 타개하려했던 열정은 모험에 가까웠다.

리더의 ‘내공’은 위기 때 판가름나는 사례가 많다. 리더는 예측하지 못한 돌발상황이 터질 때마다 준비된 대책이나 참모들의 조언 없이 오로지 자신의 직관을 믿고 판단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리더는 외롭고 고독하다.

지방대학이 버려야할 첫 번째는 수도권 대학을 본뜬 백화점식 학과운영 방식이다. 스스로 경쟁력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특성화해야 살 수 있다. 수요가 적은 부분은 과감한 통·폐합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맞춰야 한다. 전문성 제고 차원에서 4년제 대학 학생 정원을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전문기술관련 2년제 대학을 활성화해야 한다. 국내, 특히 지방 대학 분포 구조상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고등교육을 받은 실업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와 국가는 더 혼란스러워 진다. 정부는 정·관·경 관련기관과 대학까지도 과감하게 지방으로 분산 이주시킬 수 있는 정책을 수립, 실행해야 한다. 자립형 지방화 실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선행돼야할 제1의 조건이다. 물론 중심축은 지방대학이 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론 어렵다. 자치단체 등 지방 스스로 지역특성에 기반한 혁신체계를 구축, 자립화의 새로운 조건을 창출해야 한다.

알아야 면장도 한다

지방대학은 그 지역 주민이 지키고 키우는 생물체와 같다.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면 잘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지역민들이 양육의 희망을 잃고 고향을 떠나가고 있다. 애석한 일이지만 대한민국 정치의 산물이다. 정치권은 늘 국민화합을 외치지만 항상 구두선이다. 내심과 행동은 지역파당 뿐이다. 이 같은 사실은 며칠만 지나면 간단하게 증명된다. 너무 빨리 쉽게 말을 바꾸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희망이 보이는 곳에 인재가 모인다. 또 인재가 모이는 곳에 희망과 발전이 있다. 충북도만이라도 지역 특색과 경쟁력 있는 분야를 대학과 함께 집중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 인재를 지역에서 만들 수 있다.

충북의 상당수 대학들은 지금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다. 총·학장들의 민첩한 위기대응능력 발휘가 절실하다. 리더는 인기가 없어도 바른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삐끗하면 대학도 망하고 개인의 리더십도 상처를 입게 된다. 지도만 있고 여행은 없는 정책은 곤란하다. 지방대학 총·학장들은 이제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우리 속담의 의미를 처절하게 되새겨 봐야 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