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규야, 내 뜻을 잘 알겠지?”

“대주, 걱장 마시우!”

아직은 어린 티가 묻어 앳되게 보였지만 장팔규가 당차게 대답했다. 그동안 장팔규는 송계 구레골을 떠나 북진본방에 온 뒤 장석이가 시키는 일을 하며 별달리 하는 일 없이 그냥저냥 지내오고 있었다. 노는 것도 놀아본 놈들이 잘 노는 법이었다. 타고난 팔자가 천한 놈으로 태어나 일이 등골에 배긴 놈들은 노는 게 더 견딜 수 없었다. 최풍원이 한양으로 공납품을 싣고 간 이후 돌아올 때까지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있다 보니 좀이 쑤셔 생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다 대주 최풍원으로부터 할 일을 받자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잘 할 수 있겠지?”

“염려 마시우, 여적지 나가나 들어가나 남 눈치꾸러기로만 살았다우. 힘 있고 돈 있는 놈들 눈에 띄어봤자 떡 주는 놈은 하나 없고 뭐라도 빼앗으려는 놈들만 있으니 그게 아주 인에 박혔다우. 그래서 남 눈치도 잘 보지만, 남 눈에 띄지 않는 것에도 이골이 났다우!”

“팔규야, 네가 잘못하면 형님과 의가 상할 수도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해야 한다. 내 뜻을 잘 알겠지?”

“대주, 걱정 마시우!”

아직은 앳되지만 장팔규가 당차게 대답했다.

북진임방 장순갑에 관한 일은 일단 장팔규에게 맡겨두고, 최풍원은 청풍도가의 횡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는지 그 방법에 대에 대해 골몰했다. 북진본방의 현재 처지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청풍도가와 겨뤄 이길 힘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고 임방들의 장사를 방해하며 본방의 목줄을 죄기위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리기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각 임방에서는 좋지 않은 전갈이 속속 들려왔다.

“수산장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청풍도가 무뢰배들이 오가는 장꾼들을 위협하고 있어 우리 임방이 고사할 지경이오!”

청풍읍장과 수산장으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한 단리임방주 복석근이었다. 단리가 막히면 수산장만이 아니었다. 강을 거슬러 옥순봉과 장회나루까지 실리곡리·지곡리·다불리·괴곡리·계란리 등 연안에 있는 모든 마을과도 물품거래가 끊길 수밖에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복석근이 북진본방까지 직접 달려와 알렸다.

“단리 임방주님, 길을 막고 횡포를 부리는 것 외에 다른 짓은 안 합니까?”

최풍원이 복석근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지난번 공납물품을 우리 임방에 바쳤던 사람들을 청풍도가에서 나와 호달구고 있다네!”

“어떻게요?”

“먹을 거하고 쓰는 물건은 도가에서 받아먹고, 어째 팔 물건은 엉뚱한데다 갖다 팔았느냐고 갈구며 당장 빚진 것을 내놓으라고 횡포를 부리며 오복조르듯하고 있다네!”

“마을 사람들은 어찌하고 있답디까?”

“그들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니 마을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로 죽 쑤고 있을 수밖에 뭐 할 일이 있겠는가. 팔 물건이 생기면 다시는 다른 곳에 가지 않고 도가에 팔겠다는 약조를 강요하니 그리 하고 있다네!”

복석근 임방주가 단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며칠 뒤 강 건너 임방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전한 것은 박왕발이었다. 집에 잠시 다니러갔던 박왕발이가 아버지 박한달이로부터 들은 연론임방의 사정을 최풍원에게 전했다.

“대주, 청풍도가에서 험표를 발행하고 있답니다요!”

“험표?”

박왕발이의 험표라는 말에 잠시 의아했으나 최풍원은 곧 그것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최풍원이 행상을 다닐 때 살미장 무뢰배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끌려가 살미도가 임근포 행수로부터 받았던 것이 험표였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험표는 장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허가증이었다. 험표는 나라나 관아에서 발행하는 공식적인 문서가 아니었다. 나라에서는 상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미 오래전에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 그리고 누구나 장에 나와 자유롭게 물건을 팔고살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도 아직 금난전권 같은 잔재가 큰 향시가 열리는 장을 중심으로 장사꾼들 사이에 남아있었다. 험표를 발행하는 이유는 뻔했다. 그들이 겉으로 표명하며 당위성을 내세우는 것은 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모든 상행위를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상 속셈은 따로 있었다. 장사꾼들의 속셈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한 푼이라도 더 이득을 내는 것이었다. 향시가 열리는 큰 장마다 있는 각 도가에서 발행하는 험표는 자신들의 이득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그들이 사사로이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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