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붓글씨를 좀 써보자면 어떤 책을 보아야 할까? 이런 고민하는 사람에게 정답으로 나타나는 책이 바로 ‘예주쌍즙’입니다. 예주쌍즙은 청나라의 포세신이라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붓을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붓을 놀리는 방법, 붓글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을 자주 잘 설명한 책입니다. 1980년대에 전국의 대학에 서예학과가 몇 개 생겼는데, 그런 곳에서 반드시 교과서처럼 보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1980년대 잠시 나왔다가 사라져서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그 대신 나온 책이 바로 이 책 광예주쌍집입니다. 앞에 廣(넓을 광)이 붙었으니, 앞서 있던 포세신의 예주쌍즙을 좀 더 넓혔다는 얘기겠지요. 말하자면 뒷날 보완한 개정증보판 같은 것인데, 예상대로 포세신의 예주쌍즙을 저본으로 하여 그것을 넘어서려고 애쓴 흔적이 많이 보이는 책입니다. 붓글씨 입문서로서는 손색이 없고, 또 이보다 더 깊이 논의하기도 힘들다는 점에서 붓글씨의 첫걸음이자 마지막 도달점이라고 봐도 될 듯합니다.

그런데 ‘예주쌍즙’이라고 해야 하는지 ‘예주쌍집’이라고 해야 하는지 다들 갈팡질팡인 모양입니다. 楫이 ‘집’으로도 ‘즙’으로도 발음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앞의 설명 부분과 도판 두 부분으로 나뉘어서 편집하였으므로 輯과 같은 글자로 보고 쌍집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하여 쌍집이라고 쓰는데, 이런 생각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앞의 舟는 뭐란 말입니까? 앞의 배 때문에 배에 딸린 노(楫)가 나온 것인데 앞의 배를 무시하고 輯의 뜻으로 해석한다면 옛 사람들의 운취를 뭉턱 잘라먹는 꼴이죠. 楫은 ‘노 즙’자이니, 예주쌍즙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예주쌍즙은 아주 멋진 문장이 됩니다. 예술의 배는 두 노로 저어간다! 이론과 도록 두 가지 노를 저어서 옛 사람들이 가던 붓글씨의 강을 거슬러간다는 뜻이겠지요.

붓글씨는 동양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붓글씨를 쓰다 보면 아, 옛 사람들이 왜 이런 짓을 이토록 오래 해왔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넘어야 할 곳과 닿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숙제 같은 것입니다. 그 숙제를 풀면 이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한결 깊어지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오래도록 붓에 매달린 것입니다. 모든 문화는 처음에 눈요기로 시작하지만, 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이 행한 것을 실제로 겪어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대중들이 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하는데, 이런 특수한 책도 소개하게 되었네요. 관심이 자꾸 옛날로 거슬러가는 듯합니다. 제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뜻이겠지요?

문방사우 중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가 붓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붓에 관한 전문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증평의 유필무 붓장을 취재하여 책을 한 권 썼습니다. ‘한국의 붓’.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