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식이가 강을 건너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양평·단리·연론 임방에서도 기별이 왔다. 모두 강 안쪽에 있는 북진본방의 임방으로 읍장이 서는 청풍도가와 지척에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임방부터 청풍도가에서 손을 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북진본방에 물건을 수급해주는 임방들 중 청풍도가를 둘러싸고 있는 네 곳의 임방이 목줄기 같은 곳이었다. 그곳이 타격을 받아 물산이 원활하게 들어오지 않으면 북진본방으로서는 날개 부러진 새와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그들 임방은 각 마을과 청풍도가로 통하는 읍장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그리로 흘러들어가는 물산들을 먼저 사들여 북진본방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청풍도가에 의해 막혀버린다면 북진본방으로서는 목으로 넘어오는 물산들이 없으니 점차 말라버릴 것이었다.

동몽회원들을 동원해 임방에 가하는 해코지를 막는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청풍도가와 싸워 거꾸러뜨리던지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야 해결될 문제였다. 그러나 아직은 청풍도가와 맞서 싸울만한 힘이 북진본방으로서는 약했다. 그렇다면 청풍도가에 코를 꼬이고 있는 마을사람들의 족쇄부터 풀어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그들로부터의 직격탄을 피하는 길이었다.

청풍관아 내 어떤 고을민들이고 청풍도가에 빚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사는 것이 곤궁하다보니 남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백성들 처지였다. 너무나 급박하니 관아에서 빌려먹고, 부자 지주에게 빌려다먹고, 장사꾼들에게 빌려다 먹다보니 처처에 걸려있는 것이 빚이었다. 빚을 지더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이 보이면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 년 소작을 부쳐 소작료를 내고나면 미리 당겨다먹은 빚을 갚기는커녕 식구들 땟거리를 해결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니 빚이 줄어들기는 커녕 해가 갈수록 첩첩이 쌓여만 갈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빚에 코가 꿰여 마음대로 운신도 하지 못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종처럼 부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청풍도가에서도 고을민들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장리쌀이나 물건들을 빚으로 주었다. 그리고는 갚지 못한 고을민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려먹었다. 일테면 도가에서 사놓은 원거리 물건을 도가로 옮겨오게 하거나, 농사 짓고 받아놓은 곡물을 빚을 핑계 삼아 빼앗아오거나, 산과 들에서 얻은 약초 같은 돈 되는 물산이 있으면 임자 마음대로 팔지도 못하게 하고 청풍도가로 가져오도록 했다. 물론 품값은 고사하고 끼니나 주며 물산 값도 이자에 이자를 쳐서 거저다시피 빼앗았다.

고을민들도 억울했지만 자신들이 진 빚이 있으니 아무 소리로 못하고 참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고을민들이 청풍도가에 진 빚이 큰 돈이 아니었다. 처음 한두 말 빌려먹었던 것이 새끼에 새끼를 쳐 두 섬 석 섬이 된 고을민이 대다수였다. 있는 부자는 쌀 수백 섬이나 하는 천삼도 입가심으로 먹었지만, 없는 사람들에게는 쌀 한 말도 천 짐 만 짐이 될 수 있었다.

“청풍도가 횡포를 언제까지나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고, 어찌 하면 좋을런지.”

“무슨 수가 있어?”

장석이가 막막한 표정을 짓고 있는 풍원이에게 물었다.

“지금으로선…….”

최풍원이라고 달리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방법이라면 고을민들이 청풍도가에 지고 있는 빚을 대신 갚아주고 것이었다. 그러나 나라에서도 못하는 가난 구제를 최풍원이 무슨 수로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답답하기는 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청풍도가에서는 북진본방의 각 임방들을 조여왔다. 광의리 임방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온 동몽회 대방 도식이가 전하는 이야기는 더 구체적이고 심각했다.

청풍도가에서는 도가상인들과 도가와 거래하고 있는 장사꾼들과 보부상들을 총동원하여 마을을 샅샅이 훑고 다니며 물산들을 사들이고, 무뢰배들을 동원해서는 빚지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호달구고 빚이 없는 사람들도 위협을 주며 가지고 있는 물건을 딴 곳으로 넘기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청풍읍장이 가까운 곳을 대상으로 그러고 있지만 이제 점차 강 건너 학현이나 교리 임방까지 손을 뻗힐 것이고 종당에는 북진본방까지 넘볼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기 전에 무슨 방도를 찾아 청풍도가의 횡포를 막아야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형님, 애들을 끌고 쳐들어가 청풍도가를 절단 내놓을까요?”

도식이가 불끈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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