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석 한국교통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창의성에 도움을 주고 창의적 기술을 가르쳐주는 제안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기회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카마츠와 새넌 이다. 이 두 사람은 창의적인 과정에 접근방법이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요시로 나카마츠의 발명 중 대부분은 콤팩트디스크 플레이어 나 디지털시계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나카마츠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 때 그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이끌어 주었다. 나카마츠의 어린 시절 깊이 베어든 기술은 그의 지적 능력에 도움이 되었다. 일본 어린이들은 20살까지 암기하는 법을 배우는데, 훗날 자유로운 연상을 위해 이러한 종류의 두뇌훈련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뛰어난 단계의 독창성을 이룰 수 있는 통제와 자유의 조합이다.

1948년 서른두 살의 클로드 새넌이 벨연구소 연구원으로 종사하고 있을 때 통신이론에 관련된 논문을 썼다. 그것은 어떻게 정보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지 입증하는, 이전의 모든 통신기술을 통합시키는 논문이다. 그는 더 나아가 모든 유형의 정보매체가 이진수나 비트로 암호화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일단 정보가 디지털화 되면, 오류없이 전송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당시에는 이것은 대단한 개념적인 도약으로, 콤팩트디스크와 나카마츠의 플로피디스크뿐 만 아니라, 오늘날의 오류수정 코드와 데이터 압축 알고리즘의 개발을 이끌었다.

논문에 나타난 그의 식견이 놀랍긴 하지만, 그가 컴퓨터 시대의 청사진에 관해 기술한 1940년에 쓴 논문으로 인해 거의 무색해졌다. 그때까지 통신기술은 전자파를 전선으로 보내야 한다고 여겨졌다. 논문에서 새넌은 진실과 거짓이라는 논리적 가치가 0과 1의 수적 상징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것은 당신이 그림이나 단어, 소리를 0과 1로 이뤄진 일련의 흐름을 전선으로 보냄으로써 전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회로가 결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공지능의 기초가 됐다. 1940년에 MIT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새넌은 벨 전화연구소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31년간을 보내고 MIT 교수가 됐다. 1948년에 공동 집필자 워런 위버와 함께, ‘통신의 수학적 이론’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은 오늘날 정보이론의 기초를 형성했다. 1950년대 초반까지 그의 이론은 전문유행어처럼 회자됐다. 새넌은 언론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새로운 연구논문과 강의에 대한 요구가 계속됐다. 유명세를 싫어했던 그는 결국 연구직과 교수직에서 물러나, 1978년에 은퇴 후 메사추세츠 윈체스터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새넌은 창의적인 문제해결방식으로 유명했다. 그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각도에서 문제와 씨름하는 것을 즐겼다. 나카마츠처럼 벨 전화연구소 복도에서 밤에 저글링을 하면서 외발자전거를 타는 별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발명을 했는데, 특히 재미있는 움직임을 가진 것들을 만들었다.

발명가의 생각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항상 움직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함께 한다. 심지어 오락에서도, 새넌과 나카마츠 두 사람 모두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호기심과 가능성을 반영하는 색다른 아이템과 개념을 계속해서 내놓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