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장수로서 명궁(名弓)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 말 위화도 회군(回軍) 이후에 군권을 장악하고 창업을 위한 명분 쌓기와 행동에 들어가는데, 하루는 어느 점술가를 찾아가서 자신이 왕이 되는 운명을 타고 났는가를 묻게 된다. 그 점술가는 이성계의 턱 밑에 난 긴 수염을 가리키며 대왕의 운을 타고 났다고 했다. 그 수염이 소위 말하는 임금의 수염인 왕수(王鬚)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점술가가 말하기를 왕수라는 게 한 사람에게만 있어야 하는데 또 한 사람에게도 있어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성계가 자기 자신 말고 왕수를 가진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점술가가 이성계의 부하인 아무개라고 일러주었다. 이 얘기를 들은 이성계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 사람은 이성계가 가장 아끼는 장수였기 때문이었다.

이성계, 부하의 분노 이해

그러나 창업을 위해서는 왕수를 가진 그 부하 장수를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아끼는 부하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그 부하가 잠잘 때 몰래가서 그의 왕수를 뽑아버리기로 했다.

계획한대로 이성계는 부하가 잠든 틈을 타서 부하의 턱에서 왕수를 뽑아버렸다. 잠자다가 왕수가 뽑히는 바람에 깨어난 그 부하가 이성계를 쳐다보니 자신의 턱에 있던 왕수를 뽑아들고 있는지라 화가 나서 칼을 뽑아들었지만 주변에 있던 이성계의 부하들에게 제지를 당하고 말았다. 분을 삭이지 못한 그 장수는 자신도 이성계의 왕수를 뽑기로 마음먹고 그 기회를 기다렸으나 좀체 기회가 오지 않았다. 끝내는 이성계를 죽이려고 생각하고 그 기회를 노리던 중 이성계가 뒷간으로 볼 일을 보러 가는 것을 틈타서 볼 일을 보고 있는 이성계의 뒤에서 활을 쏘았다.

신궁으로 알려졌던 이성계가 부하가 뒤에서 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눈치 채고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아버리는 것을 보고 놀란 부하가 도망을 가자 이성계가 그 부하를 보고 “이 사람아 아무리 화가 났기로 장난이 좀 지나친 것 같네” 라고 말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부하에게 장난이 지나쳤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이성계의 그 대범함과 자신의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는 신통한 무술에 부하 장수는 질려버리게 된다. 부하는 이성계가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이성계가 왕운을 타고났음을 인정하면서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이성계도 비록 자신의 목숨을 노렸지만 부하의 분노를 이해하고 그를 용서한다. 부하의 목숨도 구하고, 자신의 왕업도 이룬 이성계의 일화이다.

이성계의 일화에서 우리는 대권의 명운은 하늘로부터 타고나는 것이긴 하지만 명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엿볼 수 있다. 전임, 또는 전전임 정권시절 대권을 향했던 인사들에게 사룡이니, 오룡이니 하면서 언론에서 떠들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용들이 실제는 도마뱀 정도였음을 훗날에야 알게 됐다. 참여정부 3년차 들어 다시 용들의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는 이제 지도자로서의 자격은 갖춰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경험칙이긴 하지만 너무 큰 대가를 치르는 경험을 우리는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의 명운은 지도자의 지도력과 현명한 판단과 앞을 보는 혜안에 달려있음은 지난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온 터이기에 그렇다.

지도자 포용력 필요하다

파당끼리의 싸움에도 능히 잘 이끌어가는 정치력과 사욕 없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철학을 가진 지도자가 이끌었을 때 우리의 역사는 찬란했었고, 그러지 못했을 때는 국민들이 고초를 당했던 역사를 다시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치판이 달라지면 국민들도 달라질 것이고, 국민들이 달라지면 나라도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리이다. 마침 연두 기자회견을 가진 대통령의 입에서 예년과는 달리 맺힌 한 풀이를 하는듯 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안도하는 분위기이다. 과거를 헤집고, 이념갈등으로 편 가르고, 국가 기관의 권위를 무시해 나라를 흔드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이성계의 왕수를 떠올리면서, 비록 턱에 왕수가 나지 않았을지라도 지도자의 대범함과 포용력과 미래를 향한 밝은 눈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지도자의 왕수임을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겐 지난 2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상처 났던 국민들의 마음을 다스릴 지도자의 따뜻한 지도력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정치인들이 있어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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