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가을걷이를 끝내 텅 비어있는 밭에서 한 해를 돌아본다. 봄부터 로터리치고 비닐 피복해 씨앗을 심고 물주며 가꾸고 잡초를 뽑아주던 밭이다. 모두 수확하고 쓸쓸히 찬바람만 간간이 지나친다. 왠지 스산하다. 이때 산 너머 저편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소리가 담장을 넘어오면 무슨 일인가 넘겨다본다. 담장보다 키가 작으면 까치발을 하고 바라본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서로 담장 너머로 넘겨주며 나눠 먹는다. 냄새가 먼저 넘어와 몰래 먹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이웃과 정이 쌓여간다.

산 너머에 있는 나무 한그루가 이웃 골짜기 사는 모습이 궁금했던지 산등성 위로키를 키워 엿보고 있다. 그때 처음 산 너머 세상을 보았을 것이다. 누가 무엇을 하고 뭐가 심겨 있나 궁금 했나보다. 넘겨다보고 보다 나은 기술을 습득 하고 배우려고 한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시골의 조그마한 산골마을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여있어 하늘만 빠꼼한 곳이다. 산 너머 세상은 보이지 않고 밤하늘 별들만 반짝이는 곳이었다. 그곳을 벗어나보지 못하고 자란 탓에 다른 큰 도시를 구경도 해보지 못하고 자랐다. 논두렁이나 밭둑을 뛰며 노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어느 해인가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처음 기차를 타게 됐고 얼마를 달려 서울역에 도착했다. 수많은 차들이 지나다니고 시골 앞산보다 높은 빌딩들이 늘어서 있어 눈이 휘둥그레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바로 도착한 곳은 남산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하늘을 날아 순식간에 정상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세상을 만났다. 크다. 커도 너무 크다.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는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집과 학교에서 자랑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자동차가 줄지어 오가는 개미보다 많고, 차가 하늘을 날고, 산보다 높은 빌딩을 보았고, 자장면을 먹었는데 단무지가 맛있었다는 등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처음 접한 세상 신기하기도 하고 긴장은 됐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그 후 내가 사는 시골이 답답하게 느껴져 상급학교 진학은 도시로 나가기로 결심하고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저 너머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나무도 나의 심정과 같았을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산 너머 세상을 넘볼 생각을 했을까. 다른 나무에 비해 생각이 많은 나무 이었을 것이다. 누구든 생각하지 않는 발상을 하고 넘겨보며 배우고 자신을 넓혀나가려는 노력이 있기에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그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내 골짜기에 극한되지 않고 산 너머 쪽 골짜기의 상황을 엿보려는 나무의 도발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 극한 되지 않고 보다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나무의 도발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세상의 문물을 배워 내가 사는 곳에 접목시키려는 큰 꿈을 키우려고 산 능선 위까지 키를 키우고 넘겨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곳이 있으면 까치발까지 하고 넘겨다보고 배울 기세다.

이제 내일부터는 밭에서 혼자 일을 해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산등성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힘들 때 서로를 바라보며 위로하고 힘을 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춤을 추며 응원도 해줄 것이다. 우린 이제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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