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나루는 도떼기장이 되었다. 최풍원이 북진에 장사 터전을 잡으면서 이미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난장은 벌어졌었다. 이번은 예전의 그런 난장과는 규모면에서도 달랐다. 예전에는 장사꾼이라고 해야 북진본방을 중심으로 한 각 임방주들과 청풍 인근 향시를 도는 장돌뱅이들이 전부였다. 장에 물건을 사러 나오는 장꾼들도 근방의 마을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울의 경강상인들이 여러 척의 경강선을 몰고 와 북진나루에 닻을 내리고 정박을 했다. 그리고는 다양하고 풍성한 한양의 물건들을 북진나루에 풀어놓았다.

본래 북진은 장이 열리는 곳이 아니었다. 물론 예전에도 강을 타고 올라온 짐배들이 상류의 다른 큰 고을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지거나 여의치 않은 일이 생겨 북진나루에 배를 대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짐배 장사꾼들이 풀어놓은 물건들을 사기위해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장이라 하기도 부실한 아주 작은 장이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장이 아니었다. 북진 근방에 닷새마다 정기적으로 향시가 서는 곳은 청풍·금성·수산·덕산·한수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장이 열리고 인근 장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곳은 관아가 있는 청풍장이었고 그 중심에는 청풍도가가 있었다.

그런 북진나루에 경강선들이 한꺼번에 닻을 내리고 경강상인들이 북진에 머물며 물건을 풀어놓자 북진본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북진에 경강상인들이 올라와 장사를 한다는 소문이 나자 이제까지 그냥 지나쳤던 등짐꾼들이나 봇짐꾼 같은 장돌뱅이들도 북진나루를 건너 모여들었다. 이제 앞으로 장맛비가 내릴 때까지 두어 달 동안 경강상인들은 북진에 머물며 장사를 할 것이었다. 그러면 향시를 돌던 장사꾼들이나 보부상들은 경상들의 물건을 받아  북진으로 올 것이었다. 경상들이 물건을 직접 산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이 가지고 오는 물량들이 많아 일일이 장꾼들을 상대하며 소매하기는 어려웠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경강상인들은 그 고을의 지리나 형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장사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모른다거나 그곳에서는 어떤 물건이 잘 팔리고 지금 생활 형편은 어떠한지를 모른다면 그건 깜깜한 밤길을 걷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경강상인들은 나루에 배를 정박시키고 나루 근처 주막에 머물며 물건을 매매하거나 물물교환을 했다. 인근 마을 사정에 밝은 지역 장사꾼들은 경상들이 머물고 있는 나루터 주막이나 난장으로 와 물건을 싸게 구입하여 향시나 장이 열리지 않는 시골이나 장이 먼 산골로 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그러다보니 장날만 붐비는 향시와는 달리 수시로 장사꾼과 장꾼들이 드나드는 북진나루는 연일 북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북진나루가 붐비니 북진본방은 당연히 번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북진본방이 번잡해지며 겪게 된 가장 큰 문제는 경상들과 장사꾼들, 그리고 장꾼들이 머물며 먹고 자는 문제였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그런 기본적인 문제가 불편하면 아무리 탐나는 물건이 산처럼 쌓여있어도 여러 날을 머물기 어려웠다. 장사는 사람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오랫동안 머물며 요모조모 살펴봐야만 매기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북진본방은 협소했다. 처음부터 숙식을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장사를 하며 물산들을 쌓아놓기 위한 용도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먹고 잘 주막도 마땅치 않고 이들의 물건을 보관해둘 창고도 턱없이 부족했다.

“최 대주, 북진이 커지려면 먼저 먹고 자는 게 편해야 하외다. 그게 우선 해결되지 않으면 왔던 장사꾼들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오!”

“그렇다네. 여러 날을 머물며 장사해야하는 우리네 장사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장꾼들도 모처럼 장에 왔다가 목이라도 축이고 분 냄새라도 맡을 주막이라도 들려야 기분도 나고, 기분이 나야 뭐라도 살 기분이 들지 않겠소이까?”

우선 임시방편으로 북진본방과 주변 민가에서 임시방편으로 머물고 있는 경상들과 물건을 사러오는 장사꾼들이 한결같이 불편함을 토로했다.

최풍원은 무엇보다도 먼저 북진본방부터 확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양에서 보았던 마덕출의 여각처럼 많은 장사꾼들과 물건이 일시에 들이닥쳐도 얼마든지 먹고 잘 수 있고 안심하고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그런 여각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집을 짓는다는 것이 손바닥 뒤집듯 생각만 한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생각이나 입으로 짓는 집은 수백 채도 단숨에 지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집을 지을 수 있는 여력이 생겨야 가능한 일이었다. 최풍원은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난 다음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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