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

1987년 대학 2학년 때 우연한 사고로 경추를 다친 그는 하루아침에 전신이 마비되었다. 움직일 수 있는 기관은 얼굴뿐이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화가가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이 꿈틀거렸다. 그는 입에 붓을 물었다. 구필화가 임형재. 그는 1998년 세계구족화가로 다시 태어났다. 

우연한 계기로 그의 요철 심한 생을 알게 된 나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궁금했다. 충청남도 광천의 ‘그림이 있는 정원’ 수목원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 달렸을까?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언덕 위에 그림처럼 서 있는 하얀 갤러리를 만날 수 있었다.

잿빛 선으로 세밀 묘사한 뿌리들이 마치 가는 혈맥처럼 보였다. 목마른 이 캔버스에 툭 하고 물을 떨어뜨린다면? 어찌나 생생한 실감을 주는지 그림 속 나무가 화폭을 찢고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갤러리에 장애의 그림자는 없었다.

한 그림 앞에 멈춰 섰다. ‘가족이 있는 풍경'(120×70cm - 종이, 수채)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부모님과 가족들의 모습을 소나무로 표현했단다. 다복한 가족사진을 보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맨 뒤에 작은 나무 두 그루가 수줍게 숨어 있었다. 화가 자신과 상상 속의 애인을 살짝 그려 넣은 것이라고 큐레이터가 귀띔해주었다.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꺾인 청춘이 아닌가! 나는 왜 지레짐작으로 그의 가슴이 세상에 대한 울분으로 꽁꽁 얼어붙었을 거라 상상했을까? 햇살 가득한 그림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사랑의 메시지가 술렁대는 듯했다. 이 그림은 연하카드로 발행되어 지구촌 곳곳으로 배달되었다. 그는 이미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두 번이나 입선해 화단에 화제를 뿌린 적이 있다. 그의 그림들은 점차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 빛 속에 당당하게 내걸리게 되었다.

나는 그의 그림들을 완상하는 동안, 색깔별로 각각 다른 촉감 즉 ‘손가락의 느낌'을 기억해 그린다는 미국의 시각장애인 화가 존 브램블리트와 ‘다섯 살 감성을 지닌 청년작가’라고 불리며 천진난만한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는 지적 장애 화가 데니스 한 등 장애를 극복한 이들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떠올렸다. 위대한 예술혼 앞에 장애는 혹시 불편함 정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그의 그림의 주 소재는 나무였다. 그는 왜 하고많은 소재 중에 나무를 즐겨 그리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못내 궁금했지만, 수목원을 돌아보며 그 궁금증의 일단을 풀 수 있었다.

화가의 아버지는 아들의 창밖에 나무를 심었다. 아들의 불행이 당신 탓인 것만 같아 자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실오라기만한 희망일지라도 매달리고 싶었다. 평생 붙박이로 살아가는 나무가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신비의 생명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나무를 심으며 달랬다.

점차 시간은 불치의 마음에 꽃을 피우고 치유를 낳았다. 부자간의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아들은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절박했던 부정(父情)은 하루하루 자리를 넓혀 마침내 삼만 평의 거대한 수목원을 일궜다. 수목원은 수려함을 인정받아 홍성 8경 중 4경으로 불리고 있단다. 

한겨울에도 바쁜 일손이 있었으니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였다. 그는 사다리 위에서 전지를 하고 있었다. 소나무의 맵시를 잡는 중이란다. 곁가지를 제거해야 큰 나무로 충실하게 자랄 수 있단다. 강건한 손놀림에 굳은 믿음이 실려 있었다. 수목원의 주종이 적송인 것 또한 우연이 아닌 듯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수목원 저 안쪽으로부터 청정한 바람이 불어왔다. 산수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풍채 좋은 소나무들이 굽이굽이 나를 반겼다. 그런데 그 수려한 나무들 중에 특이한 형상을 한 소나무 하나가 자꾸만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속이 비어있는 소나무였다. 이 녀석은 커다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불구의 형상을 한 소나무가 괴기스럽게 느껴졌다. 속을 비워낸 소나무라! 대나무가 아닌 소나무가 속을 비워낸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 실체를 마주하고 보니 감정이 묘했다.

숙명을 순순히 받아들인 나무는 주저 없이 자신의 속을 다 비워내고 있었다. 영양분 대부분은 빈 몸을 딛고 자라난 줄기로 보내고 있었다. 자신도 지키고 제 분신들도 늠름하게 키워내고 있었다. 이야말로 비움의 미학이 아니가. 나는 부지불식간 두 손을 모으고 나무에 절을 했다. 나는 그 나무에게서 그들 부자(父子)를 읽었다. 

삶의 권태란 녀석이 느닷없이 일상의 보행에 태클을 걸어올 때 한 번쯤 광천에 있는 수목원 ‘그림이 있는 정원’을 찾아가 볼 일이다. 치열한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주어진 운명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받아들인 그들 부자의 모습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나무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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