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12월, 나무들이 바람을 맞고 서있다. 겨울의 찬 바람을 맞고 서있는 나무들을 보면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겨울의 나무 중에서도 특히 배롱나무를 보면 그렇다. 배롱나무는 평소에도 껍질이 거의 없는 몸통인지라 따듯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겨울이 되면 헐벗은 몸에 몰아치는 칼바람에 더욱 추위가 느껴지곤 한다. 어쩌면 그 추위가 서러울 정도다.

배롱나무를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벗은 몸통을 간질이면 그 떨림이 나뭇가지 끝까지 전해진다고 해서 간지럼 나무라고 한다고 한다. 그처럼 민감한 피부를 가진 배롱 나무가 겨울이 되면 얼마나 추울까? 저렇게 헐벗은 몸으로 두 팔을 벌려 온몸으로 추위를 안고 섰으니 세찬 칼바람이 얼마나 매서울까? 채찍을 맞는 듯 괴로울까 싶다. 안타깝기조차 하다. 한 때는 무성한 잎을 자랑하며 백일동안 붉은 꽃을 달고 있다고 하여 목백일홍이라 불려 지기도 하였기에 겨울이 되어 잎도 꽃도 없는 나무가 더욱 서럽게 느껴진다.

겨울이 오기 전 나무는 여름 붉은 꽃을 피우며 그 찬연한 자태를 온 천하에 뽐낸다. 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한 그동안 자신의 노고를 스스로 치하하듯 자태를 자랑하며 햇볕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이 꽃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고 찬양한다. 나무는 그렇게 도도하게 백일을 뽐내며 지낸다. 그렇게 아름답고 멋진 시절이 있는가 하면 고통스런 나날도 있다. 수십 일을 계속하여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에 지친 몸이 비비 꼬이고 온몸이 타들어 가기도 한다. 때로는 몸에 생채기를 내면서 뒤틀어지기도 하고 가지가 꺾이기도 한다. 나무는 그렇게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한다. 

겨울을 맞이하며 나무는 다시 혹독한 시련을 맞이한다. 힘들고 괴롭고 견디기 힘든 겨울을 온몸으로 벼텨 내야 한다. 그렇게 겨울을 견뎌 내는 나목(裸木)을 보다보면 정신이 퍼뜩 새롭게 맑아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목이 겨울의 추위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견디고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 조국을 위해 한 몸을 바치는 독립투사의 강인한 모습 같기도 하고 정신적 수련을 쌓고 있는 도인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겨울 벌판에 / 언제까지라도 서 있는 / 나목이 되고 싶다// 모든 일상을 떨구고 / 찬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채 / 홀로 바람 부는 벌판에 서고 싶다// 그리하여 얼룩진 우리의 영혼이 / 유리알처럼 투명해지는 날 / 내 안의 저 깊은 뜨거움으로 / 되살아나고 싶다// - 나목 全文

이 시는 필자가 오래 전에 썼던 작품이다. 작품을 쓰면서 필자는 겨울 벌판에 서있는 한 그루 나목이 되고 싶었다. 벌거벗은 채 몰아치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은 채 홀로 서있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세파에 찌든 영혼이 깨끗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안에 있는 어떤 뜨거움으로 다시 살아나고 싶었다.

한 해가 달력 한 장에 매달려 있다. 희망찬 어린 시절과 열정적인 청년시절을 보내고 멋지고 대접받는 중년을 지낸 후 노년에 접어든 노신사처럼 우리 모두는 끝내 12월을 맞아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벌판에 서있는 나목처럼 계절을 지내며 얼룩져온 일들을 깨끗이 지우며 힘들고 어렵지만 한 해를 마무리했으면 싶다. 우리에게 닥친 찬 바람일랑 우리의 얼룩진 영혼을 깨끗이 해 주는 벗으로 생각하고 아직도 내 안에서 꺼내지 못한 뜨거움을 끌어내어 긴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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