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과 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법부 70년 역사상 전직 대법관을 상대로 한 구속 영장 청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떤 직책이라도 잘못을 저질렀으면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기에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법원행정처장 출신인 두 전직 대법관의 신병 확보에 나서면서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수사도 가속도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범죄사실에 공범으로 적시돼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행정처가 일본 전범기업 측 대리인과 수시로 비밀리에 접촉한 사실을 확인해 범죄사실에 포함시켰다. 특히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전범기업 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관계자와 만났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들은 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행정소송, 헌법재판소 내부사건 정보 및 동향 수집, 상고법원 등 사법행정 반대 법관 및 변호사단체 부당 사찰 등 전방위로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옛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을 맡은 일선 법원의 판결선고 뿐만 아니라 재판부 배당에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옛 통진당 의원들이 낸 지위확인소송의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2015년 11월 판결을 선고하기 전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법원행정처 내부 지침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입장이 재판부에 제대로 전달된 것이 맞느냐며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는 1심에서 자체적으로 세운 판단 기준에 어긋나는 판결이 나오자 심상철 당시 서울고등법원장을 통해 특정 재판부와 주심에게 항소심을 배당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서울고법이 사건 배당을 하기 전 특정 재판부에 통진당 소송이 돌아가도록 사건번호를 비워둔 채 다른 사건들을 배당한 정황도 검찰 수사로 확인됐다. 결국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사건배당에 개입했다는 정황인 셈이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모든 경위를 밝히고 윗선의 지시와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한다.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은 6일께 진행돼 밤늦게나 새벽에 구속여부가 결정된다. 영장심사는 당초 무작위 전산배당에 따라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에게 맡겨졌으나 이 부장판사가 회피 신청을 해 재배당된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들이 상관이었던 전직 대법관을 심사하고 판결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공정해야할 법관이라는 신분으로 사법부를 좌지우지 한 사법농단의 죄는 어떤 고위직이어도 피해가서는 안될 일이다. 두 전직 대법관은 이미 많은 혐의들이 밝혀져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부디 개인적인 관계를 떠나 공정하게 판결해 사법부가 거듭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사법부가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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