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리 언구에게 쉰 섬을 천삼 값으로 쳐준다 해도 최풍원에게 일백오십 섬이나 떨어지는 일이니 횡재도 이만저만한 횡재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천삼을 만드느라 언구가 씨를 뿌리고 나서부터 수십 년이 되니 그 공력을 생각한다면 마땅한 값이겠지만, 최풍원은 중간에서 거간 역할만 했을 뿐인데 그런 큰 돈을 별다른 힘도 들이진 않고 벌어들이니 맨입으로 남의 물건을 얻은 것 같아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최풍원도 북진본방에서 그만한 돈을 벌려고 하면 무거운 짐을 등짐으로 지거나 우마에 싣고 험한 길을 발바닥이 닳도록 쏘다녀야 될 일이었다. 그런데 심부름으로 그저 도기와 한양으로 옮겨다만 주고 순식간에 그런 돈을 벌게 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한양은 조선 팔도의 다른 고을과는 다른 세상 같았다. 한양에 와서 시시각각으로 느끼고 있는 일이지만, 이건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도깨비장난을 하는 것 같았다.

“아침나절에 작자를 알아볼까 해 시전에 나갔는데, 이번 사은사를 따라 대국에 가게 된 장사꾼을 만났다네. 그가 천삼을 보더니 눈을 까뒤집는 거여. 그러더니 나를 물고 늘어지며 그걸 자기에게 달라는 거여!”

“그래 어떻게 하셨습니까요?”

최풍원은 마덕출이 그 거상에게 천삼을 얼마에 팔았는지 그것이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다른 말을 했다.

“상품 쌀로 삼백 섬을 그 자리에서 준다기에 넘겨주었다.”

상품 쌀로 삼백 섬이라면 아무리 박하게 계산을 해도 천오백 냥이 되는 돈이었다. 한양 돈은 돈도 아니었다. 시골 고을에서는 돈 열 냥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빚 독촉에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를 하는 지경인데, 마덕출은 힘들이지 않고 말 몇 마디로 앉은자리에서 순식간에 상품 쌀 백석을 벌어들이니 무슨 도깨비장난 같았다. 도깨비기 방망이를 두들겨도 그런 일은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한양에서는 도깨비도 어려운 일을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비싼 것을 사먹는 사람이 있다니, 그런 사람들은 대체 누군가요?”

최풍원은 그렇게 값을 치르고도 그런 것을 먹는 사람들이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 궁금했다.

“그런 천삼은 대국에 가면 두세 배는 더 받을 수 있다는구만!”

“천 냥도 엄청난데 두세 배라면 도대체 얼마를 받는다는 말입니까?”

“대국서는 조선 삼이라면 꺼뻑 죽는다는구만! 더구나 그런 귀한 천삼은 없어서 못 팔지 살 사람은 널려있다는 구만.”

마덕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최풍원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양 돈도 돈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데, 한양돈은 중국 돈에 비하면 또 검불이었다. 똑같은 돈인데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모두 물건으로 가지고 가겠는가?”

마덕출이 다시 물었다.

“천삼 대금은 돈으로 주시지요.”

최풍원은 천삼 대금을 엽전으로 달라고 했다.

“상품 쌀로 이백 가마를 준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천 냥은 돈으로 준비해주겠네!”

마덕출이 내일 청풍으로 돌아가는 배에 천 냥을 실어주겠다고 했다.

“마 주인님, 고맙습니다.”

거래도 거래였지만 최풍원은 마덕필 여각주인으로부터 배운 점이 많았다. 특히 장사를 하며 인정에 끌려 거래하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쳤다. 인정에 끌려 이래저래 거래를 했다가 서운해고 말을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매정하게 따질 것은 따져보고 흥정을 마쳐야 그 거래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이 고마워서 최풍원은 마덕필에게 고개를 숙였다.

“포와 버섯은 상필이와 같이 팔아 처분이 끝나면 기별을 해주겠네!”

마덕필이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해서 한양에서의 볼일이 끝이 났다. 아직 안동포와 버섯가루가 남아있어 말끔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최풍원이 한양에 가지고 와 매매한 물산은 모두 일천오백 냥이 넘는 돈이었다. 한양의 거상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최풍원에게는 생전 처음 해본 큰 거래였다. 이번 한양 장삿길에서 최풍원은 여러 가지로 배운 점이 컸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장사꾼에게 견문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장사꾼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것을 파는 것임을 최풍원은 한양 장삿길에서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북진에 돌아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곰곰이 되새기고 있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