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乙酉年), 닭의 해다. 굳이 음력으로 따지자면 닭의 해가 시작되는 시점은 음력 정월 초하루인 다음달 9일부터라 하겠지만 새해의 시작 기준이 양력인지라 지금부터를 을유년이라 여긴다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동양에서는 대체로 새로운 해의 시작을 세 가지 기준에 맞춰 정해왔다. 주역(周易)을 근거로 하는 이들은 음양 오행에 맞춰 양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冬至)부터 새해가 열린다 주장했으나 보편적인 세인들은 달력상의 음력 1월 1일에 맞춰 한해의 시작을 삼았다. 또한 명리학의 관점에서는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입춘일을 새해의 첫 날로 생각했다.

십이간지에서 닭(酉)의 해는 열 번째의 순번이다. 시각의 유시(酉時)는 오후 5시에서 7시를 가리키며 닭의 달(酉月)은 음력 8월이고 동서남북의 방위로는 서쪽이 닭의 방향으로 정해져 있다.

다산 등 상서로운 이미지

닭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새벽 울음소리로 광명을 불러 어둠과 귀신을 쫓고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닭으로,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기도 해서 풍수에서의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입신과 부귀공명을 기원하는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서재에 닭 그림을 걸었는데, 닭의 벼슬을 관(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닭 그림은 무엇과 함께 그렸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했다.

관을 닮은 벼슬이 있는 닭과 관의 모양을 한 꽃인 맨드라미를 함께 그려 입신양명을 기원했는가 하면 풍요한 모란과 함께 닭을 그려 부귀를 소망했고, 사군자인 국화와는 장수를, 석류와 닭의 어우름은 다산을 소원하는 것이었다. 가정의 화목과 다복을 위해서는 어미 닭과 병아리를 같이 그린 그림이 사랑을 받았다.

노(魯)나라 애공(哀公) 때에 충신인 전요(田饒)는 닭이 가진 다섯 가지 덕을 인간에 빗대어 계유오덕(鷄有五德)이란 명구를 남겼다.

애공이 간신들에게 놀아나서 국사를 그르치는 것을 보다 못한 전요는 자신의 벼슬을 사직하고 대신 그 자리에 닭을 천거했다. 전요의 기이한 행동에 대해 애공이 ‘어찌 벼슬자리에 사람 대신 닭을 천거하느냐’며 역정을 내자 전요는 군주에게 자신이 닭을 천거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아뢰었다.

“닭은 다섯 가지 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머리에 관을 썼으니 문(文)이요, 다리에 발톱이 있으니 무(武)이며, 적 앞에서는 물러나지 않고 싸우니 용(勇)이고, 모이를 나눠 먹으니 인(仁)이며, 밤을 지켜 때를 어기지 않고 알리니 신(信)입니다. 그래서 오덕(五德)을 두루 갖춘 닭을 천거하는 것입니다.”

닭이 문, 무, 용, 인, 신의 오덕을 갖추었다며 닭보다도 못한 간신배들을 비아냥거린 전유의 재치가 통쾌하다.  

한편 닭이 가진 다섯 가지 덕을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빗대어 오상(五常)이라 비유하기도 했다. 서로 불러 골고루 모이를 나누어서 먹는 것은 인이며, 싸움에 임했을 때 물러서지 않으니 의라 보았다. 머리 위에 항상 벼슬을 달고 있으니 관을 바르게 쓴 형국과 같아 예이고, 항상 주위를 경계하며 둘러보고 지켜내니 지이며, 아침마다 어김없이 새벽을 알리니 신이라 한 것이다.

유교에서 교훈으로 삼아

이렇듯 유교에서는 닭이 가진 다섯 가지 덕을 좋은 교훈으로 삼았다. 닭의 오덕과 오상을 지금 다시 새겨보면 닭 만한 덕을 갖추기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닭을 우습게 알며 닭대가리 운운하는 비속어들의 의미가 욕이 아니라 칭찬으로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워진다. 닭에게 자신의 벼슬자리까지 양보하며 닭을 칭찬한 전유가 닭을 욕으로 여기는 우리의 경솔함을 안다면 아마도 무덤에서 일어나 호통치며 나무랄 것이라는 상상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힘찬 닭의 울음소리는 혼돈의 어둠을 깨고 구원의 새벽을 연다. 청아한 닭의 울음소리에 희망의 아침이 열리듯 닭 해의 시작이 희망의 빛으로 눈부시길 기대해 본다.                           

류 경 희  < 논 설 위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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