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460년 전국시대. 노(魯)나라 군주 애공(哀公)은 실권이 아주 약했다. 내적으로는 대부들의 세력이 강했고, 외적으로는 주변 오나라와 제나라가 강력하여 항상 견제를 받았다. 특히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왔을 때 등용하고 싶었으나 대부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이후로 애공은 항상 대부들을 제압하는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였다.

이 무렵 노나라 남문 부근은 겨울이면 갈대숲이 우거져 사냥하기에 아주 좋았다. 물고기는 물론이고 여러 종류의 새와 짐승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사냥꾼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욕심 많은 일부 사냥꾼들이 몰래 갈대숲에 불을 놓았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그 기세가 살벌하여 금방이라도 남문을 불태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백성들은 불을 끄기보다는 불길로 인해 도망가는 짐승들을 잡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아무도 불을 끄지 않으니 불길은 더욱 거세어졌다. 결국 사태가 심각해지자 노나라 애공에게 보고되었다.

애공은 당장에 불을 끄도록 군사들을 내려 보냈다. 군사들이 남문에 도착해서 보니 백성들은 짐승을 잡느라 불길을 즐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본 군대책임자가 애공에게 급히 아뢰었다.

“백성들은 이익이 있어야 움직이는 법입니다. 지금 불을 끄는 일은 죽음을 무릅써야 하고 또 아무런 이익이 없으니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길로 인해 백성들은 짐승을 잡을 수 있으니 누구도 불을 끄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하명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애공이 명을 내렸다.

“남문의 불을 끄는 백성에게는 후한 상을 내리겠다!”

그러자 다른 신하가 급히 나서서 아뢰었다.

“지금 남문은 난리입니다. 그런데 누가 불을 끄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게다가 그 많은 백성 중에서 누가 더 공이 크고 작은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애공이 답답하여 말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신하가 이어 아뢰었다.

“지금은 이익이 아니라 엄중한 벌이 필요합니다. 불을 끄지 않고 짐승을 잡는 자를 엄벌하고, 불을 끄지 않는 백성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탈영병으로 간주해서 엄히 벌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불을 진압할 수 있을 겁니다.”

애공이 그 말에 따라 서둘러 명을 내렸다. 그러자 백성들은 혹시라도 자신이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불을 끄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모든 백성들이 불끄기에 나섰다. 남문의 불은 이렇게 하여 진압되었다. 이는 ‘춘추좌씨전’에 있는 이야기이다.

엄형득정(嚴刑得情)이란 죄가 밝혀지면 엄하게 벌한다는 뜻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의 죄는 일반 백성들의 죄보다 더 엄하게 벌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전직 두 대법관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한다. 이제는 칼끝이 전임 대법원장 양승태의 목을 향하고 있다. 요즘 영화보다 재미있는 관가의 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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