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형님! 연금 얼마나 나오우?”

“낸 돈이 몇 푼 되지 않는데 뭘 바라겠나?”

“대박골 웅식이 형님은 기초연금하고 합해서 60만 원 넘게 나온다고 하던데요.”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경로당 뜨락에 앉은 두 영감이 하릴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형님이라 불리는 유돌 씨는 올해 일흔여덟 살이고, 그 옆에 앉아 말동무하는 문한 씨는 일흔다섯 살이다. 두 사람 다 전에는 ‘땅 벼락’이라는 별호를 얻을 정도로 억척같이 일을 했지만, 이제는 다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농사짓던 땅은 영농조합에서 맡아 농사를 짓는다. 이제는 일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가을에 겨우 먹을 식량 정도만 주고 있어도 어쩔 수가 없다. 농사지으랴 자식 키우랴 소진된 몸은 회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두 영감 모두 아들딸이 성가 하여 도시에서 살고 있어 매달 얼마씩 보내주는 용돈으로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웅식이는 나보다 형편이 훨씬 나은데 어찌 연금이 더 나온다는 게여?”

“잘 모르지만, 땅을 아들 앞으로 다 돌려놨다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려? 약삭빠르긴,”

“웅식이 형님은 60만 원 넘는 돈이 나오는데 형님네는 고작 국민연금 부은 것만 나온단 말이에요. 지금은요. 눈 밝고 똑똑하면 나랏돈 얼마든지 빼먹는 세상이래요. 정부 돈은 먼저 맡는 사람이 임자라고요.”

“예끼 이 사람, 어디서 그런 못된 말만 듣고 와서는. 듣기 싫네.”

“흘려들을 말이 아니에요. 형님도 세상 물정을 좀 아셔야 해요.”

“이 사람 보자 보자 하니까, 그래 자네는 얼마나 받는가?”

유돌 씨가 버럭 화를 내자 문한 씨가 한발 물러선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니 화를 내는 유돌 씨나 문한 씨 모두 악의 없는 대화이다.

“저야 뭐 지금은 국민연금만 25만 원 받고 있지만, 가진 땅하고 몇 푼 안 되는 예금 같은 것을 아들 앞으로 돌리면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가 되어 월 6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요.”

“누가 그러든가?”

“제가 알아봤어요. 웅식이 형님은 벌써 자식 앞으로 다 돌려놔서 그 형님 앞으로는 집도 절도 없답니다.”

“그래서 자네도 그렇게 할 참인가?”

“예,

가만있으면 나만 바보가 되는데 왜 안 해요. 읍내 경로당에 한 번 가보세요. 그곳에 와 있는 분들 거의 그렇게 했대요.”

“나는 내 복대로 살 생각이네. 그 기초연금 몇 푼 더 탄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그런 이야기 그만하고 저기 새로 생긴 추어탕 집에 가서 점심이나 먹세. 그 집이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구먼.”

두 노인은 터덜터덜 걸어서 청산 추어탕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직 이른 점심때인데도 이미 건넛마을 윤 영감이 와 있었는데 마주 앉은 젊은 사람은 정장한 것으로 보아 이 근방 사람은 아닌 듯했다.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 전인지 상에 무슨 서류를 내놓고 도장을 찍고는 서류를 챙겨 봉투에 담고 있었다.

“점심 먹으러 왔는가?”

먼저 유돌 씨가 인사를 건네자 서류를 황급하게 걷어서 봉투에 담는 젊은이의 모습이나 윤 노인의 당황한 얼굴이 뭔가 미심쩍었지만 꼬치꼬치 캐어물을 형편도 아닌 것 같았다.

“응, 그려 오랜만일세.”

윤 노인이 건성으로 대답하며 젊은이에게 어서 가라고 눈짓하는 것을 유돌 씨는 놓치지 않았다.

“그럼, 어르신 다음에 뵙겠습니다. 여기 식사비 제가 계산할 테니 맛있게 잡숫고 가세요.”

“아닐세. 내가 낼 테니 그냥 가게.”

마주 앉았던 젊은이는 카운터로 다가가 무슨 말인가 속닥이더니 카드로 계산을 한 다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우리도 추어탕하고 막걸리 한 병 주시오.”

“예.”

대답을 마친 주인이 얼마간 있다가 내온 것은 막걸리와 미꾸라지 튀김 한 접시였다.

“이거 우리가 시키지 않은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 아버님도 이 상으로 오세요. 여기서 같이 드세요.”

윤 노인이 뭉그적거리며 다가와 앉는다.

“무슨 좋은 일 있었는가?”

“좋은 일은 무슨,”

유돌 씨의 물음에 윤 노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조금 전에 나간 신사 양반이 모두 계산했어요. 추어탕 세 그릇, 막걸리 세 병, 튀김 한 접시까지, 천천히 말씀 나누시며 잡수세요.”

“아니, 누군데 우리 점심까지 사주고 가는가. 그냥 얻어먹어도 되는가?”

미심쩍기는 문한 씨도 마찬가지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점심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막걸리가 두 병 째 바닥이 나자 윤 노인이 어렵게 입을 연다.

“오늘 덕동골 밭 2천 평 팔았다네.”

“그려, 뭣에 쓰려고?”

“쓰긴….”

조금 전 그 젊은이는 서울 사는 아들이 보낸 부동산 업자이고, 밭은 아들 앞으로 등기이전을 해줬다는 내용이었다.

“왜, 이제 농사 안 지으려나?”

“이제 그만해야지.”

“증여세 같은 것은 얼마나 나온다고 하든가?”

“저 부동산 업자가 다 처리해준다고 했어.”

그 말을 듣고 보니 문한 씨도 이제 아들 말을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초봄부터 서울 사는 큰아들이 내려와 전답을 자신 앞으로 등기이전해 주면 기초연금이 나온다고 하면서 용돈도 매달 50만 원 씩 더 보내주겠다고 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형편이었다.

“아주머니! 혹시 건넛마을 마웅식 어르신 여기 안 오셨어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청산리를 담당하는 우편 집배원이 손에 누런 곽 봉투를 들고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다.

“아니, 무슨 일인데 그려?”

“법원에서 온 배달증명인데 며칠째 집에 아무도 안 계세요.”

그러고 보니 어저께 낯선 사람들이 웅식 씨 집을 둘러보며 ‘저 집을 경매로 사면 싸긴 한데 수리하려면 꽤 돈이 들어가겠다.’ 하는 말을 들은 문한 씨는 당시는 잘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예삿일이 아닌 듯 했다.

‘안 돼!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해. 자식들이 용돈 올려준다는 말 믿어서는 절대 안 돼’하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고, 유돌 씨는 무엇인가 깨달은 것이 있는 듯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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