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옛날 글 깨나 한 선비들의 서재로 잠시 들어가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게 무엇일까요? 아마도 책이고, 붓이 놓인 벼루일 것입니다. 문을 여는 순간 방안의 풍경이 들어오기 전에 먹 냄새가 코를 찔렀을 것입니다. 글 하는 선비가 갖춰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문방사우가 그것이죠. 붓, 먹, 벼루, 종이.

그리고 100년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방구석에서 책 한 권 찾아보기 힘든 그런 시절이 되었으니, 벼루나 붓 같은 것은 이제 박물관이나 화방에 가야 볼 수 있는 그런 물건이 되었지요. 어찌하여 이리 되었을까요? 시절이 변한 것입니다. 글을 통해 추구하는 바도 글이 보여주는 행위도 의미가 달라진 것이죠.

시절이 그렇게 변한 것은 그러다 칩시다. 그러면 옛날에 붓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유통되었으며, 벼루나 먹은 어떻게 만들어 썼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먼 어떻게 할까요? 서점에 가서 그것을 설명한 책을 사 보면 되겠지요.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서점도 손님이 찾는 책만 갖춰놓습니다. 그러면 문방사우에 관한 것은 장사가 될까요? 안 될까요? 오늘날 한국의 서점에서 보는 손님들의 관심은 없습니다.

즉 그에 관한 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과 100년전에 공기처럼 흔하던 것을 기록한 책이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깊은 곳까지 스며든 풍속이어서 문방사우에 관한 글이 많을 것 같은데 정말 없습니다. 붓에 관한 책도 없고, 먹에 대한 책도 없고, 벼루에 대한 책도 없고, 종이에 대한 책도 없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만난 반가운 책이 이것입니다. 문방사우에 관한 것을 총정리한 것입니다.

이 책 중에서 가장 많이 차지한 내용이 벼루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다른 것들은 유물로 남기가 힘든 것들이죠. 썩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벼루는 돌로 만들었으니 유물 중에서 가장 오래갈 만한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옛날부터 지금까지 만든 많은 벼루들이 소개되었습니다.

각론으로 들어가도 내용이 깊고 넓어서 만만찮습니다. 문방사우라는 게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니, 중국 측의 제작기법과 우리나라에서 적용된 기술까지 아울러서 좋은 문방사우들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아주 잘 설명했습니다.

이 책 하나면 문방사우 전체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이 분야의 좋은 입문서이자 전문서 노릇을 톡톡히 해냅니다.

뒤집어 보면 앞으로 문방사우에 대해 글을 쓸 사람들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되었다는 뜻이죠.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이라면 한 번 또 다른 책으로 쓸 수 있을 것인데, 과연 그렇게 깊이 들어갈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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