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도 그렇고, 안동포도 그렇고 최 대주가 너무 서운한 것 같으니 내가 작자를 만나면 흥정을 해서 최대로 받아주고 내 구전만 먹을 테니 그리 하겠는가? 나로서는 그게 최선일세!”
마덕출은 한 동에 백 냥을 더 쳐주지 않겠다던 안동포도 값을 잘 받아 구전만 챙기고 돌려주겠다며 흥정을 끝냈다.
마덕출의 이야기는 버섯가루를 자신에게 맡기는 대신 곡물을 좀 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곡물도 그냥 내줄 수는 없고, 꿀과 청, 약재·전분·백탄 대금에서 일부를 제하고 나머지는 버섯가루를 팔고 난 다음 나온 수익금으로 갚으라는 이야기였다. 최풍원은 주문받은 공납품 외에 과외의 물산들을 싣고 북진에서 내려올 때만 해도 판로에 대해서는 과히 걱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각 임방주들로부터 받은 물건들은 최고로 품질이 좋은 것들이었고, 집산된 물건들은 다시 본방에서 선별되어 갈무리한 최상의 물건들만 가지고 왔기 때문이었다. 경상도에서 넘어온 베와 약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상 한양에 도착해보니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를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못 생각을 한 것은 한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성이기에 어떤 물건들을 가져와도 잘 팔릴 것이란 기대였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려도 팔리지 않는 물건이 있고, 별반 사람이 없어도 팔릴 물건은 팔린다는 사실을 새로이 깨달았다. 잘 팔리는 물건은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스스럼없이 대하는 생필품들이고, 장사꾼들조차 매입하기를 꺼리는 물건은 사람들이 평상시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잘 팔리는 물건은 역시 사람들이 매일처럼 쓰는 그런 물건들이었다. 큰돈을 벌려면 그런 물건들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듣도 보도 못한 물건을 파는 것은 많은 공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마덕출과 흥정하며 절실하게 깨우쳤다.
“최 대주, 그렇게 하게나. 지금으로서는 그 방책이 최선일 듯싶네!”
윤왕구 객주도 마덕출의 제안을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윤 객주로서도 달리 지금의 난제를 해결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
“버섯가루는 처음 팔아보는 물건이라 걱정이 되지만, 상필이와 잘 의논해서 하면 의외로 잘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네. 사람들 혀만큼 간사한 것이 또 있겠소. 평생을 먹던 음식도 맛이 달라지면 하루아침에 끊어버리는 게 혀요. 만약 마른 버섯가루가 음식에 들어가 맛이 좋아진다면 그걸 쓰는 피전골 주막집은 노날 것이오. 그렇게만 된다면 버섯가루는 금가루가 될지도 모르겠소. 그래도 어쨌든 그렇게 되려면 시일이 좀 필요할 것이오.”
의기소침해있는 최풍원이 안스러워보였는지, 마덕출이 처음으로 희망적인 언사를 했다.
“어쨌거나 마 주인님께 모든 것을 맡기니 잘 좀 해주세요!”
최풍원이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을 했다.
“안동포는 어떻게 하시겠는가?”
버섯가루에 대한 흥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마덕출이 안동포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것도 마 주인님 뜻에 맡기겠습니다요!”
최풍원이 흥정을 포기했다.
최풍원이 흥정을 포기한 것은 한양의 장마당에서 거래되고 있는 베 시세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저 명성만 듣고 안동포라 해서 무작정 가지고 온 것이 불찰이라면 불찰이었다. 아무리 안동포라 해도 물건이 쏟아져 나오면 값이 폭락하는 것은 당연했다. 최풍원이 돌아본 한양의 공방에서는 돈이나 진배없는 귀한 베가 쉴 사이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 베 공방이 한양에는 곳곳에 있다고 했다. 베 값이 폭락할 수밖에 없었다. 안동포라 해서 별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그 명성이 아직은 남아있어 공방에서 생산되는 베와 비교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공방 베라 해도 물량이 넘쳐흐르니 안동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했다. 장사는 물건 뿐 아니라 장이 돌아가는 정황도 잘 알아야한다는 것도 최풍원은 배웠다. 정황을 모르면 곧 손해로 직결되었다. 정황도 돈이었다. 한양 장마당의 정황을 알 길이 없는 최풍원으로서는 마덕출과의 흥정에서 그가 원하는 대로 이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아서 잘 처분해줄 테니 버섯가루도 안동포도 내게 맡겨주시게! 안동포는 그래도 아직 명성이 높으니 벼슬아치들이나 호사가들에게는 그것으로 옷을 한 벌 지어있는 것이 큰 낙이오. 그러니 그런 작자들을 잘 만나 흥정을 하면 어지간히는 금을 쳐서 받아낼 수 있을 것이오. 이번이 최 대주와 첫 대면에 첫 거래니 초면에 너무 박대하게 대해 서운하게 하면 서운할 것 같으니, 이번 물건은 내가 맡아 팔아주고 구전만 먹을 테니 그리 하시겠는가? 나로서는 그게 최선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