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지난 HCN충북방송에서 충북예총과 충북민예총의 성격을 순수예술과 민족예술로 구분하는 것을 보고 길 잃은 사냥감처럼 초조했다. 방송의 주 내용이 양 단체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충북예총은 순수예술을 충북민예총은 민족예술을 지향한다는 게스트의 발언을 단순하게 넘기지 못했다. 순수예술은 무엇이고 민족예술은 무엇인가?

순수예술은 ‘순수한 예술적 동기에 의하여 창조된 예술 (daum 어학사전)’, 그렇다면 민족예술은 무엇일까? (민중예술 ‘민중이 만들거나 민중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예술(daum 어학사전), 먼저 민족이란 단어의 의미를 알아야 하고 민족예술의 의미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면상 모두 언급하기 어렵고 개인적 능력 밖이라 아쉽다.

예술이란 것도 사람 살아가는 사회구조 속에서 탄생하는 것인데 세상사 제쳐두고 예술 저 혼자 제멋에 취해 있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예술인은 예술인대로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함께 걸어가야 마땅하다. ‘하나의 사회 활동으로서 사회 상황을 반영하여 표현하는 예술(daum 어학사전)’, 참여예술을 배제한 예술 활동과 예술인의 존재는 무슨 의미로 역사에 남겠는가.

충북예총은 한국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 설립된 이듬해인 1962년 ‘예술문화 창달과 국제교류 및 예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회원의 친목과 권익을 옹호하며 상호 창작활동에 기여함을 그 목적(충북예총 홈페이지)’으로 설립했다. 대한민국 최초 민간 예술인과 예술단체의 연합이다. 충북민예총은 1987년 충북문화운동연합을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1980년대는 1979년 10·26사태로 비상계엄이 내려지고 정권에 반기를 드는 국민을 탄압하고 많은 이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는 시대였다. 1987년 6월 항쟁은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대적 사명이었다. 예술인들은 펜과 노래와 몸짓을 통해 싸워야 했고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많은 예술인이 함께하였고 1994년 ‘지역문화운동을 토대로 예술의 진보와 실천을 통하여 지역문화예술 발전에 헌신하며, 문화예술 진흥, 지역문화 창달, 문화예술 실천 활동을 통한 성숙한 시민문화 구축을 목적(충북민예총 홈페이지)’으로 충북민예총이 창립됐다.

설립된 배경만 보면 예총과 민예총은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예술이 시대적 사명에 참여한 것이지 예술을 순수와 민족으로 나눌 수는 없다. 노동운동을 배경으로 연극 공연을 하면 순수예술이 아니란 말인가. 방송도 적정한 단어를 찾지 못했을 뿐 이런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민족이나 민중 같은 단어를 색깔론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충북예총과 충북민예총의 성격이나 정체성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1987년 이후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30대 선배도 현재 30대 후배도 치열하게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여전히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인권, 환경, 노동 등 삶의 현장에 함께 한다. 예술이 정치적, 사회적 도구로 전락하지 않는 한 순수예술과 민족예술의 경계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관점 문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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