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새벽 일찍 들른 24시마트 주차장은 주말의 혼잡한 모습과는 달리 사람의 그림자라곤 찾아 수 없었다. 카트 보관소를 찾아 카트를 빼려는 순간 “아뿔싸” 카드 한 장만 급히 들고 나온 게 그제야 생각이 났다. 다시 차로 돌아가 동전을 찾았다. 하지만 며칠 전 세차를 하면서 차 안에서 굴러다니던 동전들을 모두 주워 모아저금통에 넣었으니 굴러 다니는 동전이 있을리 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부탁이라도 하겠건만 월요일 이른 시간마트는 고요함 뿐 이었다. 집안 곳곳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던 백 원 짜리 동전이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장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교실바닥에서 며칠째 굴러다니던 100원짜리 동전을 주워 책상 위에 올려놓고 주인을 기다렸지만 돈 임자도 돈을 탐내는 사람도 없었다. 며칠 전 그렇게도 아쉽던 동전이 오늘은 아무런 쓸모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나뒹굴고 있다. 아쉽던 때를 생각하며 지갑에 넣었다.

“하루종일 땅 파봐라 10원짜리 동전 하나 나오나”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의 경제 철학은 그거였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라는 뜻이겠지만 작은돈의 소중함도 함께 담겨져 있었다. 내가 어렸을 당시 백원짜리는 허연 수염을 가지런히 다듬은 세종대왕이 새겨진 지폐였다. 동전과 지폐의 무게는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에서부터 다른 느낌이었다. 100원은 어쩌다 오시는 집안의 어른들이 주시거나 새해 세배 돈으로나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1원, 5원, 10원 동전에 비해 100원 지폐가 주는 느낌은 매우 풍족했다. 평소에 벼르기만 하고 사먹지 못하던 호떡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설이 지나고 세배 돈으로 두둑해진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찾는 곳은 윗동네 찻길 옆에 있는 만화방 이었다. 미루나무가로수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만화방이 있었다. 만화방 안에는 기름에 지글거리며 익고 있는 호떡도 있었다. 동그란 누름개로 꾹 눌러 이리저리 굴리며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는 호떡을 사 먹는 것은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었다. 백 원 지폐 한 장을 내면 만화책 대 여섯 권과 호떡 다섯 개 정도를 살 수 있었다. 호떡이 담긴 종이봉투를 손에 들고 만화책을 옆구리에 낀 채 설탕 시럽이 흘러내리는 호떡을 먹으며 가로수 길을 내려오는 것이 내 어린 날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어린시절 100원이 나에게 준 가치는 지금은 어떤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소중한 추억, 그것이었다. 그 보다 더 값 비싼 물건들도 있었겠지만 100원으로 행복해지던 그 순간에 비할 수는 없었다.

백화점의 유아, 아동 용품 코너에 가면 작은 소품들, 머리 끈, 모자 등 아이들의 눈을 유혹할만한 물건들이 많다. 그런데 가격을 보면 어른용품보다 훨씬 비싼 것들도 많다. 앙증맞은 손가방 하나가 몇 십 만원 하는 것도 있다.

그런 물건에 익숙하게 자란 아이들이 교실바닥에 굴러다니는 100원 동전을 돈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 이야기를 꺼내며 현실과 비교를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물론 돈의 가치도 많이 달라졌고 사람들의 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돈의 액수를 떠나 화폐의 소중함을 등한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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