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신행정수도의 모양이 우스운 꼴로 변해 가고 있다. 말만 요란한 신행정수도일 뿐이지 내용은 15개의 중앙부처를 옮기고 마는 것으로 호들갑의 막을 내릴 가능성이 점차 농후해 진다.

국무총리실 산하 신행정수도후속대책위원회가 행정특별시(청와대를 제외한 정부부처 전체 이전), 행정중심도시(청와대ㆍ외교안보 부처를 제외한 나머지 부처 이전), 과학교육연구도시(교육ㆍ과학기술 관련 부처 이전) 등 3개의 대안을 마련하고 이들을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법무부가 이들 대안 가운데 ‘행정특별시’안은 위헌소지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또 강동석 건교부 장관도 “행정특별시는 위헌소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행정중심도시가 가장 유력한 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쯤되면 짜고 치는 고스톱 냄새가 나지 않는가. 이대로 간다면 ‘신행정수도’가 아님은 물론 ‘행정특별시’도 아니고, 중앙에 있던 정부부처 몇 개와 소속기관 등 모두 57개 기관을 옮기면서 이름만 ‘행정중심도시’니 뭐니 하며 흉내나 내고 말 공산이 크다. 행정중심도시의 경우 이동하게 될 공무원 숫자가 1만4천명에 불과하단다.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큰소리 칠 때의 명분이 무엇이었던가를 되돌아보면 현재 진행되는 신행정수도 관련 대안 논의가 얼마나 충청권과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인지를 알 수 있다.

신행정수도는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지표인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실현을 위한 정책수단이며, 이를 통해 수도권과밀을 해소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는 국책사업이다. 그러나 지금 기정사실화 돼 가는 행정중심도시가 신행정수도의 대안으로 확정된다면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에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수도권 과밀해소에는 과연 얼마나 기여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충청권 주민들에게 잔뜩 갖도록 부풀려 놓았던 신행정수도에 따른 기대심리를 어떻게 잠재울 것인지도 묘연하기만 하다. 거창하게 내세운 대선공약이었으니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고, 헌재의 위헌결정을 상기시켜 가면서 적당한 선에서 매듭 짓겠다는 의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국회 신행정수도특위 김한길 위원장이 “정부가 제출한 행정특별시, 행정중심도시, 교육과학연구도시 등이 명칭은 달라도 내용적으로 복합도시로서 유사하다”며 단일안 제출을 요구한 부분이다.

정말로 내용이 유사하다면 대안마다 차별성과 특성을 주문하고, 애초의 국정지표인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을 요구해야 마땅하지, 모두가 비슷하니 하나로 묶어 달라는 한심하고 무책임한 자세를 드러낼 일이 아니지 않은가.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이미 포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어차피 형식적으로 변질돼 가는 신행정수도에 충북도민들이 더 이상 기대할 무엇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주 초까지 신행정수도후속대책위원회가 단일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시한이다. 이 시점에서 충북도가 할 일이 무엇인가. 이원종 충북지사가 행정특별시의 ‘위헌소지’를 거론하며 이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해결해 달라고 국회 신행정수도 특위에 요구했다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된다. 위헌소지가 없는 안으로 해 달라는 건지, 위헌소지가 있더라도 밀고 나가 헌법재판소를 설득해 달라는 것인지 명확치 않다.

신행정수도 대안 결정은 국회 특위가 하고, 위헌여부의 판단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행정특별시라는 명칭을 고수하되 내용적으로는 위헌에 해당하지 않도록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닌지 궁금하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신행정수도에 관해 충북도가 이렇게 접근해도 괜찮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확고한 입장도 없이 국회나 정부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방안에 허둥대며 그때마다 의사표명하기에도 벅차 보인다.

이제 충북도민들은 껍데기에 불과한 신행정수도를 받아들일 것이지, 거부하면서 다른 주장을 펴야 하는지를 최종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충북도는 도민들의 총의를 모아 최후통첩을 보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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