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

관아에서는 양만 맞춰놓으면 질은 상관없었다. 벼슬아치들이나 경강상인들은 그 점을 이용해 관아의 좋은 물건을 빼내고 나쁜 물건을 채워놓았다. 당연히 경상들은 벼슬아치들에게 그에 상당한 뇌물을 먹였다. 경상들은 관곡을 장에 내놓고 팔아 큰 이득을 남기고, 관아에서는 나쁜 쌀을 고을민들에게 구휼미로 내주고 받을 때는 고리를 붙여 상품으로 받으니 또 몇 배의 이득을 챙겼다. 그런 돈을 밑돈으로 삼아 대궐의 고관대작까지 매수하여 나라에서 운용하는 물산까지 손을 뻗혔다. 그렇게 축적한 돈으로 공방을 만들어 싼 인력을 이용하고 한꺼번에 대량으로 물건을 생산하여 팔도의 장을 좌지우지했다. 그리고 웬만한 불법을 저질러도 뒷배가 든든한 경상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고을의 원들도 경상들이 자기들 관할 내에서 난장을 쳐도 그들의 뒷배가 두려워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경상들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공급해주고 차액을 먹는 본연의 장사보다도 편법을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경상들이 올리는 큰 이득은 결국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주는 셈이었다.

“장사가 아니라, 정말 도둑일세!”

“도거리만 해도 순진한 장사일세. 이젠 관아나 궐과 결탁하지 않으면 큰돈은 못 벌어.”

“팔도 상권을 장악하고 큰돈을 벌면 뭐하느냐 이거여. 장사는 물건을 사주는 사람들이 제일 중한데 그들을 핍박해서 장꾼들이 말라버리면 종당엔 장도 문을 닫아야할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면 장사꾼하고 벼슬아치들만 남아 뭘 하겠는가?”

“그렇게까지야 되겠는가? 그렇게 되기 전에 무슨 방도가 나겠지. 내가 윤 객주에게 하려는 얘기는 지금 한양 장사 풍토가 이리 바뀌고 있으니, 시골도 변화에 빨리 따라가지 않으면 점점 더 장사해먹기 어려워질 거라 거구만!”

최풍원은 유필주와 윤왕구 객주 이야기를 곁에서 들으며, 자신이 지금까지 해오던 장사 방법이나 북진본방과 임방들의 운용 방법도 바꿔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바꿔야할지 확연하게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의 방법으로는 오래 버텨나갈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한양에 공납을 하며 이제 장사다운 장사를 하게 되었다고 들떴던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장사가 좋은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공급해주고 그 대가를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해온 최풍원으로서는 여간 혼란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최풍원, 그리고 유필주와 윤왕구 객주가 삼개나루 마덕출이네 여각에 당도하자 어물전 상갑이와 마닥필 선주는 이미 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바쁜 사람들이니 허언은 빼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갑시다.”

여각주인 마덕출이가 먼저 운을 뗐다.

“나는 형편이 안 돼서 최 대주가 가져온 물건을 모두 살 수는 없고 형님과 어울러 일부만 사려고 합니다.”

어물전 상필이가 마덕출을 힐끗 스쳐보면 말했다.

“상필이, 솔직하게 말하게! 잘 팔릴 물건이었다고 해도 그리 할 텐가? 버섯가루라는 물건을 처음 보니 어찌 될지 몰라 간을 보느라 그러는 것 아닌가?”

마덕출이가 어물전 상필이의 속내를 간파하고 정곡을 찔렀다.

“형님은 무당 고쟁이를 입었나, 어째 그리 남의 속을 환히 뒤집어 본답디까? 형님처럼 큰 장사꾼이야 판로도 넓고 혹여 지친다 해도 별 타격도 입지 않겠지만, 저 같은 잔챙이는 물건 한 번 잘못사면 하루아침에 쪽박신세입니다요!”

“이 일대 모든 어물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그리 죽는 소리를 하는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입소문만 그렇지 실속은 없습니다요.”

상필이가 마덕출 앞에서 여전히 죽는 소리를 했다.

“일단 물주와 금부터 흥정하는 게 순서가 아니겠는가. 내가 동생으로부터 이미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네. 최 대주는 어느 정도를 받을 요량인가?”

마덕출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바로 말씀 드리겠습니다요. 버섯 자루 열 개에 삼백 냥은 받아야겠고, 꿀과 청 담은 항아리들 백 냥에, 안동포 한 동에 이백 냥, 약재 쉰 냥, 전분이 담긴 자루 마흔 개에 육십 냥, 백탄 스무 섬에 스무 냥입니다.”

최풍원이 품목 별로 양과 값을 말했다.

“그런 도합 얼마지?”

마덕출이 옆에 있던 집사에게 물었다.

“어르신, 모두 칠백 삼십 냥입니다요.”

집사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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