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장사꾼이지만 그 돈이 다 어디로 가고 있겠는가. 물건을 싸게 만들어 싸게 팔면 백성들 살림에도 도움이 될 텐데, 받을 돈은 다 받고 줄 돈은 무 자르듯 잘라 주니 무슨 형편이 좋아지겠는가. 그게 다 장사꾼들이 해먹고, 해먹는 것을 눈감아주는 벼슬아치들 주머니로 들어가고, 더 큰 돈은 고관대작들 에게 약채로 바치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백성들한테 가야 할 돈을 앉아서 처먹는 놈들이 수다하고, 일도 안하고 맨입으로 처먹는 놈들이 더 많이 처먹으니 아무리 많이 만들어내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정작 절실하게 돈과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은 백성들인데,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는 놈들 재산 불리는 데만 몰리고 있으니 그 물건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참으로 답답한 일이구려.”

윤왕구 객주가 칠패장 공방들을 돌아본 후 유필주와 함께 삼개 마덕출 여각으로 향하는 길에 한탄을 했다.

“장사꾼이 열심히 물건을 팔아 돈 벌 생각은 하지 않고 딴 짓거리를 해서 쉽게 돈 벌 생각만 하고 있으니, 장사꾼도 이전 장사꾼이 아니여!”

“이전 장사꾼이 아니면 갑자기 어디서 솟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 이전 같은 장사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구만.”

“이전 방법이 아니라면?”

“예전에는 그저 일만 꿍꿍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런다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란 말이구만. 우리 장사꾼도 마찬가지여. 우리가 처음 장사할 때만 해도 물건을 한 짐 지고 나가 열심히 발품을 팔면 돈도 모이고 그 돈으로 장사도 늘리고 했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은 그래 장사하다간 굶어죽기 딱 알맞구만. 이제까지 해왔던 단순한 바꿈이 장사로는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소. 정직하게 바꿈이 장사를 하면 밥은 먹겠지만 큰 돈은 절대 못 벌어!”

유필주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큰 돈을 만질 수 있단 말인가?” 

윤왕구 객주가 물었다.

“남 등을 치거나 도둑질을 해야지!”

“예끼 이 사람아! 장사가 남 등치는 것이야 그렇다손 쳐도 도둑질이라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겐가?”

“요즘 세상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 죽어! 장사 못해먹어! 관아 벼슬아치들하고 배를 맞추면 동네 부자 되고, 대궐 고관대작하고 배를 맞추면 나라 부자가 되는 세상인데 그깟 장꾼들 등을 쳐가지고 몇 푼이나 벌겠는가. 쌀뒤주에 쌀은 안 떨어지겠지. 그러니 너도나도 장사보다는 어떻게든 그들과 줄을 만들어보려고 눈이 벌개서 잿밥에 더 신경을 쓰는 것 아니겠나?”

“사람이 다 자기 할 일이 있는 법인데, 양반이 서책을 가까이 않고 장터에 나가 장사하고 장사꾼이 장에 나가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관에 들어가 장사를 하는 형상이니 세상이 천지개벽을 했구먼!”

“그게 요새 세상 풍토구만. 그걸 빨리 받아들이고 장사방법을 바꾼 것이 경상들이여. 그들이 팔도 산지에 가서 도거리를 해서 쟁여 놓았다가 금이 오르면 팔아 이득을 챙기던 것도 이미 옛 얘기여! 지금은 관아에서 걷어놓은 세곡이나 특산물들을 몽땅 바꿔치기 해서 단번에 수천 냥을 남기기도 한다네! 그러니 그게 도둑질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바꿔치기를 하다니?”

윤왕구 객주는 관아와 장사꾼이 물산을 바꿔치기한다는 이야기는 듣느니 처음이었다.

“돌아가는 세태를 전혀 읽지 못하니, 윤 객주도 이젠 구물이 되었구만!”

유필주가 윤왕구 객주를 보며 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필주가 말하는 경강상인들의 장사 방법은 변화무쌍했다. 예전처럼 단지 물건을 팔고 사는 그런 장사가 아니었다. 우선 거래하는 물량부터가 예전 장사꾼들처럼 소규모가 아니었다. 그리고 장꾼들이 가지고 나오는 물건을 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산지로 가서 사들이는 것이었다. 경강상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배를 가지고 팔도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산지로 가서 물건을 매입하면 몇 배나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런 물건을 한양 같은 큰 시장이나 그런 물건이 생산되지 않아 귀한 지역이나 흉년이 들어 물가가 앙등한 지역으로 싣고 가 수십 배의 차액을 남겼다. 이들은 또 지역 고을의 원님이나 관속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관아에 보관 중인 세곡을 바꿔치기 했다. 관아에서 백성들에게 거둬들인 세곡이나 특산품은 품질이 좋은 상품들이었다. 경강상인들은 하하품도 되지 않는 나쁜 물건들을 모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배를 이용해 싣고 가 바꿔치기를 하는 수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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