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정신적 고향’에 가다
‘인류의 정신적 고향’에 가다
  • 충청매일
  • 승인 2005.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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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기 교수의 티베트 기행 ①
   
 
  ▲ 티베트 가초라산 5천220m지점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연봉들.  
 

사진작가로 유명한 김진기씨(전 서원대 교수). ‘환생한 부처’로 불리는 ‘달라이라마’의 나라로 유명한 티베트는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자치구이며 완전분리독립을 요구해 중국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발 4천600m 이상의 고원지대에 자리잡은 티베트의 절경과 티베트인들의 삶에 대한 소개는 신비 그 자체다. 충청매일는 이번주부터 매주 금요일 김진기교수의 티베트 기행을 연재한다.                                                                    편집자


지구 전 육지 면적의 6.5%인 960만㎢의 중국의 땅 황토(黃土)는 지금 남토(藍土)로 바뀌어 가고 있다. 또한 올 6월이면 13억이 되는 중국인들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주고 있다. 이제 중국인들은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지면 들어가 잠자는(日出而作 日入而息)’ 식의 더이상 ‘만만디’의 게으른 민족이 아니다.

쓸데없는 일엔 참견 안하지만(少管閑事)잇 속이 닿으면 번개같이 움직이는 무서운 사람들로 변하고 있다.

그들과 이웃한 우리는 그 넓은 땅과 그 많은 사람들을 항상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2000년 8월 한달간 중국 서부의 푸른 초원을 지나 붉은 황하를 건너기도 하고, 백설을 이고 있는 설산 앞에 앉아 큰 숨을 토해 보기도 했다.

4년뒤인 지난해 8월엔 히말라야산맥에 기대있는 유라시아의 심장부 티베트의 바람이고 싶고, 구름이고 싶고, 산천 협곡을 휘도는 강물이고 싶어 그곳으로 발길을 재촉하며 사계절을 한데 모아 놓은 듯한 그 광대한 땅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변화에 또 한번 놀랄수 밖에 없었다.

중국은 전통문화의 상징으로 흔히 황화(黃河)와 용(龍), 그리고 만리장성(萬里長城)을 꼽는다.

중국당국에 의해 서장(西藏)자치구라 불리는 ‘티베트’는 그보다 더 많은 상징들로 세계에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가 끊이질 않는 곳이다.

‘세계의 지붕’, ‘인류의 정신적인 고향’, ‘지구의 마지막 남은 샹그릴라(이상향)’, ‘관음보살의 땅’ 등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표현들이 티베트를 이야기할 때 세계인들이 화두로 삼는 것들이다.

그외에도 활불(活佛)이라 일컫는 ‘달라이 라마’와 ‘포탈라궁’, 그리고 온몸을 땅에 대고 엎드리는 ‘오체투지(五體投地)’등도 자주 소개돼, 이제는 우리에게까지 많이 알려진 티베트는 말만 들어도 쉽게 가라앉을줄 모르는 설렘의 대상이다.

필자가 티베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처음 중국을 여행 하면서부터 아마 히말라야산맥이 면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특히 1991년 필자가 재직했던 서원대학교 산악부의 신강성에 있는 무즈타그아타봉(7546m) 원정 등반이 꼭 한번 티베트를 여행해야 겠다고 작정한 계기가 됐다.

원정 사전 답사를 위해 타크라마칸사막을 지나 실크로드의 마지막 도시 카쉬(喀什)에 머물며 자료를 구하다가 예의 무즈타그아타봉이 티베트 서쪽에 근접해 있고, 카라코럼 하이웨이로 접어들어 티베트의 성도 라사(拉薩)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한·중 수교이전이라 티베트 땅을 밟기는 고사하고 티베트에 대한 자료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1993년 수교는 됐으나 이런저런 사정들로 미뤄 오다가 2000년, 마침내 사천(四川)성 성도에서 한달기간으로 지프를 이용, 티베트를 거쳐 네팔로 넘어가는 기회가 왔다. 중국 측과 차량 계약까지 마치고 출발만 기다리던 중 출발 며칠을 앞두고 중국에서 팩스가 왔다. 내용인즉, 외국인은 개인 차량을 이용한 티베트 입경은 안되고 비행기로 오던가 아니면 청해성 까얼무(格爾木)에서 출발하는 노선 버스로 밖에는 입경이 안된다는 것이다.

촬영 여행이라 할 수 없이 코스를 변경, 아쉽지만 티베트를 빼고 사천성에서 출발해 감숙성, 청해성, 운남성을 돌아 다시 사천성으로 오는 장장 6천㎞내외의 여정을 마치는, 그런대로 보람있는 여행이었으나 티베트에 대한 미련은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중국 당국이 티베트와 중앙아시아를 개방하면서부터 중국당국의 정치적 의도와 영행객들의 잦은 왕래 등으로 탐험가나 여행가들을 열광시켰던 티베트의 그 본래모습이 차츰 사라져 간다는 풍편의 소식을 접할 때 조바심은 더 했고, 우연히 오스트리아 출신 스키선수 겸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 원작의 ‘티베트에서의 7년’이란 영화를 보고는 더욱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벼르고 벼르던 중, 지난해 6월 중순 필자와 오랫동안 산악활동을 하며 산악사진을 같이 해 온 정광의 선생의 흑백사진 개인전이 있어 들렸다가 여행사에 근무하는 정 선생의 제자로 부터 지금은 개인 자격의 티베트 지프 여행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얻게 됐고, 그자리에 필자와 정 선생, 그리고 평소 어디 오지 여행계획이 있으면 동행하자고 했던 고건축 전문인 장현석 건축사 생각이 떠올라 전화로 여행 계획을 설명하니 흔쾌히 동의해 셋이 떠나기로 결정했다.

정 선생의 학교 방학이 시작되는 7월말께출발하기로 일정을 조정하고, 기간은 25일에서 30일로 정했다. 코스는 사천성 성도에서 진사강(金沙江), 메콩강(瀾滄江), 살윈강(怒江)상류를 건너 4천m이상의 고원길 횡단산맥(橫斷山脈)을 타넘어 라사에 도착하는데는 한 일주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라사를 중심으로 약 10일 정도 티베트를 여행하고 난 다음에는 다시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네팔수도 카트만두를 경유, 비행기로 포카라로 이동해 안나푸르나 산군을 촬영하고 귀국하는 좀 험난한 여정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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