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간판 중에 ‘주간다방 야간살롱’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주간에는 커피를 파는 다방 영업을 하고, 야간에는 술을 파는 살롱 영업을 한다는 뜻이다. 이를 줄여 ‘주다야살’이라고 불렀다.

‘주다야살’은 농사로 치면 이모작(二毛作) 농사를 하는 격인데, 업주가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소위 물장사를 그렇게 편법으로 했던 것이다. 주간에는 술 마시러 오는 손님이 없으니 커피를 파는 다방 영업을 하다가 야간에는 술을 파는 살롱으로 업종을 바꾸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기발한 장사방법이랄 수도 있지만, ‘주다야살’은 당시의 세태를 반영한 겉과 속이 다른 모양의 유흥업이랄 수 있다. 

여야 국회의원 외유 눈살

요즘의 젊은이들은 ‘다방’이라는 단어에도 생소하겠지만, 커피가 고급 기호품으로써 대중화되지 못했던 예전에는 커피를 파는 다방은 상당히 특별한 곳이었다. 60~70년대의 다방은 만남의 장소였고, 사교의 장소였다. 또 당시에 수없이 많았던 백수들의 소일 장소였고 선남선녀들이 맞선을 보던 장소이기도 했다. 다방은 영세사업자들의 개인 사무실 역할도 했었는데, 전화가 귀했던 당시에 다방에는 전화가 있었기 때문에 영세사업자의 연락처로써의 역할을 단단히 했던 것이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된 요즘의 젊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지만 다방은 그렇게 사회적 순기능도 했던 것이다. 70년대 국세청 고액 납세자 명단에 서울 명동의 ‘청자다방’이 오를 정도였으니 전성기 시절 다방의 지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주다야살’은 머리 좋은 한국 사람들이 고안해낸 편법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주다야살’은 당시 정치판을 빗대는 것이기도 했다. 낮에는 정쟁으로 서로 싸우다가 밤에는 요정에서 형님 아우하며 필요에 따라 야합하던 당시의 일부 정치권을 두고 했던 말이기도 했다.

이렇게 ‘주다야살’을 신년 첫 칼럼의 주제로 삼은 이유는, 그 말이 유행하던 시절로부터 30~40년이 지난 지금도 비록 야합은 아니라 하더라도 국민들의 눈에는 예전의 ‘주다야살’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일부 여야 정치인들의 모습이 엊그제 TV 그림에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그렇게 온 나라가 시끄럽도록 정치싸움을 하다가, 싸움판 끝에 본의 아니게 국회의사당에서 새해맞이를 함께했던 여야 의원들이 회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언제 그랬느냐 하듯 사이좋게 외유를 떠났다.

국보법 폐지를 관철 못시켰다는 당내의 비판에 여당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바람에 여당은 지도부 공백의 혼란 소동을 빚었고, 야당은 야당대로 자중의 혼란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그렇게 서로 싸움박질 하던 여야 국회의원들이 사이좋게 외유성 해외순방을 떠나는 그림은 썩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외유의 명분은 중동지역 우리 교민 자녀 교육실태를 파악하러간다든가, 또는 아프리카 지역의회 시찰을 간다든가,  또 다른 무슨 목적으로 떠난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런 명분으로 세금을 써가며 떠나는 정치인들을 보는 국민들의 심사가 좋을 리 없다. 국민들의 눈에는 먹고살기도 어려운 판에 살아가느라 피멍든 가슴에 염장 지르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외유 명분이 그들의 주장대로 그렇게 합당한 것이었다면, 굳이 언론의 카메라를 피해 일반인들과 섞여 종종 걸음으로 출국할 필요는 없을 터인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뒤가 켕기기는 했던 모양이다.

경제살리기에 힘 모으자

지난 일년간 서민들의 살림살이보다는 정쟁으로 지샌 정치권으로부터 국민들이 받은 스트레스가 아직 풀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마침 충북도의원들도 이런 식의 외유로 출국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면 ‘주다야살’같은 행태는 중앙과 지방의 구분이 없는 모양이다.

회기 중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언행으로 환심을 사다가, 회기가 끝나면 국민의 세금을 눈먼 돈 쓰듯 하는 행동이야말로 ‘주다야살’같은 행동이다.

대통령은 올해엔 경제에 올인 한다고 했다. 정치권도 지난 일일랑 묻어두고 경제 살리기에 힘을 모아 새해부터는 국민들의 희망을 심어줬으면 좋겠다.

국민들은 정쟁만 일삼고 ‘주다야살’ 같은 행태만 일삼는 정치인들을 더 이상 봐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다야살’이라는 말은 이미 박제가 된 30년 전의 용어일 뿐이다.

박 규 홍 < 서원대 수학교육과 교수 >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