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동양에서 가장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여 주역을 읽고 그에 대한 주석서를 남긴 사람은 다산 정약용입니다. 다산의 시각으로 주역을 읽으면 절반 정도 가량이 매끄럽게 해석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읽으면서 저는 주역이야말로 버려야 할 것이라고 단정을 했습니다. 동양사 5천년간 지성인들이 주역이라는 잡다한 점책에 속은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홀가분하였습니다. 다시는 주역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눈앞에 있는 동양의학에서 오행론과 6기론으로 동양사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이론으로 이해하고 그에 관한 책을 서너권 썼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무심코 책꽂이에 꽂힌 이 책을 들추다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책들이 인용하는 그 수많은 주역 경전의 구절들이 하나도 없고 괘상에 대한 설명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꺼낸 김에 중간 부분을 열어서 몇 장 읽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주역을 처음 접한 대학 1학년 때의 궁금증을 설명한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즉시 책상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걸리지 않아서 책을 덮었습니다. 아, 하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주역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이 틀린 것이라는 반가운 생각이 큰 파도처럼 덮쳐왔습니다. 즐거운 고통이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공자가 바보일 리가 없지, 하는 안도감이었고, 이제 더 이상 책을 보지 않기로 결심한 저의 생각을 되물려야 한다는 골치아픈 설렘을 맞게 되었습니다.

저는 누가 주역을 연구한다고 하면 비웃었습니다. 제가 보건대 주역은 2진법으로 부호를 그린 것인데, 그 부호의 형성 원리와 전개 방식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하는데, 아무도 그런 설명을 하지 않고 주공이 쓰고 공자가 정리했다는 덜 떨어진 설화만 믿고 그게 옳으니 틀리니 따지는 꼴들이 우선 꼴 보기 싫었습니다. 내면의 원리를 설명하면, 그런 것들이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주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괘들의 순서와 질서일진대, 그 질서 속에 서린 삶의 의미와 생각의 고리들을 풀어내지 않으면 공자나 주공이 쓴 글자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저는 주역의 본문은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먼저 괘상의 질서가 드러나야, 그것을 보고 말한 사람들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있으니까 말이죠. 주공도 공자도 결국 괘상을 보고 몇 마디 떠든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주역의 본문 문장이겠죠. 그들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데, 그들이 남긴 글자 따위를 풀어서 설명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예상대로 김승호는 주역의 본문 얘기를 전혀 하지 않고 괘상이 그려진 질서와, 여섯 괘가 지닌 의미를 풀어냈더군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주역을 뼛속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풀어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동양의학 공부를 하다보면 사람들이 음양오행을 일생생활에서 적용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그 개념이 머릿속에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괘상이 지닌 의미와 그것들이 드러낸 질서를 이해해야만 처음 주역을 그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주역보다 더 큰 것이 있으니, 그것을 끝내 모른다면 주역 따위는 읽으나 마나 한 것이니, 심심풀이일 밖에요. 심심풀이가 재미있는 겁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죠. 주역이 삶의 지혜를 주는 책이라면, 삶의 본체는 지혜 너머에 있습니다. 아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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