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칼럼]광야에서
[김병연 칼럼]광야에서
  • 충청매일
  • 승인 2018.11.1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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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주예총 부회장

사학자들은 우리민족이 한반도에 터 잡은 유래를 70만 년 전으로 보고 있다.  당시 상황을 “까마득한 옛날 만주 벌판의 거친 풀밭 위에 먼동이 틀 무렵, ‘흥안령산맥’을 몸집이 큼직큼직하고 힘줄이 불뚝불뚝한 무리가 허리엔 제각기 돌도끼를 차고 손에는 억센 활을 들고 그 꼭대기에 턱턱 나타났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여기다!”하고 외쳤다. 장사들의 우렁찬 소리는 아침 햇살을 타고 우레같이 울리며 끝없는 만주 벌판으로 내 달렸다.”라고 상상하여 묘사했다. 

지난 11월 초에는 ‘얼음축제’로 유명한 하얼빈을 다녀왔다. 아직은 얼음이 얼지 않은 계절이지만, 그것보다 선조들의 발길을 따라 체취를 느껴보고 싶어서 ‘흥안령산맥’이 있는 흑룡강성을 택했다.

하얼빈에서 동남쪽으로 네 시간을 달려서 ‘야포리’라는 스키리조트와 눈이 많이 내린다는 ‘설향(雪鄕)’을 다녀왔다. 정말 중국은 큰 대륙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세 시간 동안 평야를 달리니, 산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산의 지형이 우리 한국과 매우 흡사하여 푸근하였다. 음식도 우리 입맛에 꼭 맞았고, 농기구나, 마늘과 고추를 벽에 걸어 놓은 것이 낯설지 않았다.

스키장의 인근에는 발해의 수도였던 ‘영안시’가 있었다. 중국당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역사로 편입하였다. 정말 중국은 무서운 나라다. 차창밖에 비친 광활한 광야에서!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에는 옥수수줄기 묶음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해는 석양에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기마민족의 기상과 웅혼(雄渾)이 깃든 이곳! 남(南)으로 남(南)으로 밀려서 겨우 차지한 한반도, 그것도 못해 남북으로 동강난 상황! 당리당략에 골몰하는 한국의 정치인들! 여기까지 생각이 갑자기 가슴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그 무엇이 있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30여년 목청껏 불렀던 ‘광야에서’란 노래가 생각이 나서 불렀다. 

청주시 낭성면에는 단재사당이 있고, 가덕면에는 단재교육원도 있다. 우리고장이 낳은 위대한 사상가 단재 신채호 선생! 그는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관에 의거하여 “역사관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이라고 했다. 무엇을 “아” 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한국 사람은 한국을 ‘아’라 하고 다른 나라를 ‘비아’라고 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적 역사관으로 보고, 우리 역사의 지평을 고구려를 중심으로 만주벌판까지 넓혔다. 삼국 가운데 고구려는 중국과 대립하면서 ‘아’와 ‘비아’의 투쟁을 가장 잘 수행한 국가라고 했다. 반대로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를 친 것은 “아와 비아의 투쟁”에서 배신하고 뒤통수를 때린 것이라고 했다.

5일 간의 여행! 마치 꿈만 같이 감회가 깊었다. 석양을 붉게 물들인 광야에 서서, 단재 선생 역사관과 만주벌판의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기상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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