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 청주 청원도서관 사서

불어오는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계절이다. 며칠 동안 잠깐씩 내린 비로 촉촉한 바닥에 들러붙은 은행잎이 온 거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것을 보니 어쩐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으니, 떠나지 못해 안달한 마음을 타인의 여행 이야기를 읽는 것으로 위안 삼아 보았다.

이 책은 카피라이터인 저자가 낯선 곳에서 일상을 즐기듯 한 여행들의 기록이다. 보통의 여행이 가야 할 곳, 봐야 할 것, 먹어야 할 것,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로 빼곡히 채운 계획들의 실행이라면 이 책의 저자에게 여행이란 적당한 방황과, 적당한 고생과, 적당한 낯섦에 대한 탐닉이다. 대단한 무언가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도 아니지 않게 여기게 되는 그 마음을 만나기 위해 떠나온 것이 여행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굳이 해외여행일 필요는 없다. 거창하게 유럽여행일 필요는 더더욱 없겠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생경한 곳에서, 바쁜 일상만 쫓느라 어제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다면, 꼭 어딜 가고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 묵지 않아도 삶을 여행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첫 사랑과 첫 여행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이 책의 구절처럼 쓸쓸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면 아련한 첫사랑을 기억해내듯 생애 첫 여행은 낯섦과 서툶으로 미숙했던 내가 있었기에 잊을 수 없는 게 아닐까.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보니 곧 겨울이 오려나보다. 이번 겨울은 어느 낯선 곳에서 어떤 여행을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여행서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대리만족이 아닌 바로 ‘나’인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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