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팔리지 않을 물건이었다. 표정만 보아도 유필주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음을 여실하게 알 수 있었다.

“국물 같은데 넣으면 고기를 넣은 것처럼 맛이 구수하다고 합니다.”

최풍원이 영월 맏밭나루 성두봉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다.

“저걸 넣으면 뼈 우린 해장국처럼 된다는 말인가?”

“여하튼 어떤 물건인지 알 수 없으니 난감하구먼!”

유필주도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물건도 보지 않고 여기서 이래봐야 시집도 안 간 처녀 애 낳기를 바라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물건이 있는 삼개나루로 가서 보고 얘기하세!”

윤왕구 객주가 머뭇거리는 유필주에게 물건이 실려 있는 배로 가보자고 했다.

삼개나루는 나루가 아니라 물 위에 또 하나의 고을이었다. 팔도 육지와 바다에서 모여든 배가 닻을 내리고 정박해있는 모습이 물 위가 아니라 땅바닥처럼 보였다. 배마다 세워져있는 돛대가 얼마나 많은지 바지랑대를 촘촘하게 꽂아놓은 것처럼 서있었다. 아마도 허풍 심한 사람이 삼개나루를 구경했다면 수 천 척의 배가 강을 덮고 있어 물이 보이지도 않는다 말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배가 빽빽하니 거기에서 부려지는 물산과 거기에 붙어 일하는 사람들도 백지알처럼 많았다. 최풍원은 삼개나루의 번잡함을 보며 북진나루를 생각하니 기가 꺾이기도 했다. 한양에 올라와 다양한 물산을 보며 눈이 트이기도 했지만 장사꾼들 사이에 오가는 거래량이나 흘러 다니는 돈의 액수를 보니 이제껏 자신이 청풍 언저리를 행상하며 만지던 돈은 그저 푼돈에 불과했다. 한양의 장사꾼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죽은 것 또한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양 장사꾼들이 수박덩이라면 최풍원은 좁쌀이었다. 좁쌀 수만 번 굴러봐야 수박 한 번 구르리만 못했다. 아무리 죽어라 굴러봐야 수박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이 느껴졌다.

“유 객주, 칠패장 똥패가 삼개는 뭔 일인가? 물가기 전 어물은 안 팔고 상갑이는 또 웬일인가?”

덕판 위에 서있던 마덕필이가 최풍원 일행들이 배 언저리로 다가오는 것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이봐, 마 선주!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눠먹어야지 워째 마 씨 형제들만 독식하려 하는가?”

유필주가 심드렁하던 좀 전과는 달리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유 객주, 좋은 것을 나눠먹던 시절은 이전 얘기여. 이젠 세상이 달라진 것도 모르는가? 맛있는 음식은 숨겨놓고 혼자 몰래 먹는 게 요즘 세상인심이여!”

“그 인심 좋던 마 씨 형제가 워째 그리 변했는가?”

“그래도 아직은 예전 동무 몰래 먹을 정도로 야박해진 걸 아닐세!”

마덕필이 너스레를 떨며 배 위로 올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윤 객주, 어떤 물건인가?”

덕판에 올라서자 유필주가 물었다.

“그렇다네. 저 자루들이 여기 젊은 최 대주 북진본방에서 가져온 청풍 산물이라네.

마덕필이가 갑판에 잔뜩 쌓여있는 물산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덕필이의 경강선 갑판에는 싸리나무로 성글게 엮은 발에 담긴 백탄 더미와 항아리에 담긴 청 종류들, 눈처럼 희고 잠자리 날개보다 가벼운 안동포와 자루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유필주와 상갑이가 쌓여있는 물산으로 다가가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고, 자루 주둥이마다 풀어보며 찬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흥정은 어찌 되었는가?”

한참을 살펴보던 유필주가 윤왕구 객주에게 물었다.

“마 선주 장형이 여기 물건을 몽땅 넘기라고 하고 있다네!”

“덕필이 형님께서 침을 발라 놓으셨단 말인가? 형님께서 선점해놓은 것 잘못 손댔다가 치도곤당하기 싫으니 난 손 떼겠네!”

유필주가 과장되게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빠지겠다고 했다.

“자네가 언제부터 우리 형님을 그리 깍듯하게 공경하셨는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가 보구만!”

마덕필 선주가 유필주 행동을 유심히 살피며 어그깠다.

“아무리 장사라도 자네 형님이면 내 형님이니 잘 모시는 것이 도리고, 장사도 예의범절이 있는데 형님이 먼저 선점해 놓른 것을 워째 중도막이에서 가로챌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도리가 아니지!”

유필주가 당치도 않은 일이라며 설레발을 쳤다.

“유비 장비가 여기에 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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