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581년, 양견(楊堅)이 수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가장 공이 많은 신하는 고경(高?)이었다. 이전에 양견은 대권에 뜻을 두고 인재를 구하게 되었다. 도중에 고경이라는 이름을 듣게 됐다.

“병법에 밝고 지략이 뛰어나며 유능하고 충성스런 사람입니다.”

양견은 즉시 사람을 보내 함께 일할 의향이 있냐고 고경에게 물었다. 이때 고경은 하루의 말미를 달라고 했다. 판단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음날 고경은 양견 앞에 나아가 절을 하며 아뢰었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게 되어 행운입니다. 제 집안이 망하더라도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경은 이날부터 양견의 기밀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듬해 6월, 멸망한 북주에 충성하던 장군 위지형이 양견에게 반기를 들었다. 반란의 기세는 대단했다. 양견은 급히 장수들에게 위지형을 토벌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군대가 하양(河陽)에 이르자 이상한 유언비어가 퍼졌다. 양견의 장수들이 모두 위지형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소문이 퍼지자 병사들이 크게 흔들렸다. 누구도 감히 반란군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이 보고를 받은 양견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임자로 장수 최중방을 보냈으나 그는 집안일을 핑계로 명령을 받들지 않았다. 이어 다른 장수들도 이러저러한 핑계로 나서지 않았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때 고경이 선뜻 나섰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제가 군대를 통솔하여 위지형의 목을 베어오겠습니다.”

양견이 이를 허락하자 고경은 즉각 출발하였다. 집에도 들르지 못한 채 하양으로 떠났다. 대신 부하를 보내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하였다.

“어머니, 충효 이 두 가지를 같이 할 수 없어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고경은 먼저 군대 통솔을 위해 상과 벌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자 병사들이 따랐다. 싸움이 시작되자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단숨에 반란군을 물리쳤다. 양견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고경에 돌아오자 자신의 침소에서 술자리를 열었다. 양견은 수나라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고경에게는 내각을 이끌도록 했다.

양견은 누구보다 고경을 신임하였다. 이에 신하들의 시기와 질투가 많았다. 하루는 고경이 진(陳)을 정벌하러 떠날 때 누군가 고경이 반란을 꾀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양견은 도리어 상소 올린 자를 잡아 처형하였다. 이에 양견이 말했다.

“군주와 신하가 합심하는데 어찌 파리 따위가 이간질 할 수 있겠느냐!”

그 후에도 여러 신하가 양견 앞에서 고경을 헐뜯었지만 모두 조정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양견은 후에 신하 고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경은 거울과 같은 사람이다. 그를 헐뜯는 것은 곧 그를 닦아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울은 닦으면 닦을수록 더 빛나는 법이 아니더냐.”

이는 수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수서(隋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명견만리(明見萬里)란 만 리 밖의 일을 환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관찰력과 판단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일이나 사람을 만나서 좋은 인연이라고 판단되면 달리 잴 것이 없다. 그저 정성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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