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대한제국이 망하면서 우리나라는 갈가리 찢어집니다. 나라가 두 동강 나는 것은 물론이고, 계층과 신분과 사상과 성향에 따라 사분오열됩니다. 그 결과가 해방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납니다. 그래서 다른 그 어느 시대보다 이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뜨겁고 안타깝습니다.

이 책은 조선의용대를 만든 밀양의 독립운동가 윤세주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정리한 책입니다. 조선의용대는 약산 김원봉이 만든 의열단의 후신인 항일 독립단체입니다. 이들은 1930년대 접어들어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중국으로 건너가서 독립투쟁을 이어갑니다. 주로 중국 국민당과 협력하여 군사학교를 만들고 일제에 항거하는 무장투쟁을 하죠. 그러다가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부패한 국민당의 패색이 짙어지자, 태항산의 팔로군과 연합작전을 폅니다. 팔로군은 중국 공산당이 국공합작으로 재편성하여 이름 붙인 군대죠. 그리고 조선의용대는 실제로 일본과 전투를 하며 많은 희생자를 냈고, 그들의 용감한 전투 모습은 중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런 상태에서 해방을 맞습니다. 윤세주는 해방을 맞기 3년 전인 1942년에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합니다. 그리고 조선의용대는 해방을 맞으면서 북한의 공산 정권과 협력합니다. 중국 공산당과 함께 한 이력이 이들을 북한과 이어지게 한 것이죠. 그런데 이들은 나중에 연안파라고 하여 1950년대 말에 북한 정권으로부터 숙청당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돌아가죠. 중국 정부가 북한 정권에 압력을 행사하여 권력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신들의 옛 동지를 중국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들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살아서, 한국에서 찾아온 역사학자들과 방문객들을 맞아서 그 시절을 고증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이들의 행적에 대해 우리가 왜 까맣게 몰랐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알 수 있습니다. 상해임시정부를 정통으로 여기는 대한민국은 이들의 막바지 행적을 공산주의라고 하여 용납할 수 없었고, 만주항일빨치산을 정통으로 여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중도좌파인 이들을 회색분자라고 하여 끝내 배척한 것입니다. 남한 정치인들에게는 빨갱이로 보이고, 북한 정치인들에게는 종파주의자로 보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 조선의용대는 해방을 맞는 마지막 순간까지 실제 군사력을 갖추고 일본과 전쟁을 한 마지막 조선인들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일본과 전쟁을 수행한 조선의용대야말로 암흑 같은 1940년대를 등불처럼 밝힌 거의 유일한 단체입니다. 이런 단체를 우리는 지금 전혀 모릅니다. 이들의 막바지 행적 때문에 좌익으로 몰려서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일조차 금기로 여겨진 세월이 지난 분단의 현실이었고, 2000년대 들어서 겨우 이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나타났을 정도였습니다. 김영범의 이 책은 그런 연구의 성과가 최근에 나타난 것입니다. 2013년에 이 책이 나왔으니, 이 글의 주인공인 윤세주가 1942년에 전사한 것을 기준으로 보면 71년만에 나타난 것입니다.

조선의용대는 남과 북 양쪽으로부터 버림받은 단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하는 단체입니다. 자기 한 몸을 버려서 나라를 구하다가 삶을 마감한, 어쩌면 이런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마지막 독립운동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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