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한양 큰 장사꾼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만!”

윤왕구 객주가 함 대고를 추켜세웠다.

“쌀은 어떻게 가져갈 텐가?”

“마침 모래 삼개에서 올라가는 배가 있다네.”

쌀은 올라가다 이포에서 싣게!”

“이포에서?”

“내가 여주에서 받아놓은 쌀인데 마침 잘 되었네. 나는 예까지 안 가져와도 되고, 거기는 쌀을 싣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닌가? 또 여주는 쌀 곶이니 한양보다는 아무래도 금이 헐하지 않겠는가? 내가 여주에서 한양까지 싣고 내려오는 운임 대신 쌀을 더 얹어줌세!”

함길중 대고는 거상답게 모든 일처리가 시원시원했다.

“함 대고 어른, 쌀은 하품으로 주셨으면 합니다!”

“왜 그러는가. 여주 쌀은 하품이라도 다른 곳에 가면 중품 이상일세. 이왕이면 좋은 쌀로 가져가시지?”

함길중 대고는 좋은 쌀로 주겠다고 했지만, 최풍원은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어 하품쌀로 달라고 했다.

“하미는 석당 얼마나 가는지요?”

“상미가 닷 냥쯤 하니 하미는 석 냥 쯤 될 걸세.”

“그럼 백 석은 되겠군요.”

“가져오는 운임을 빼준다고 했고, 좋은 물건을 보내줬으니 열 석을 더 얹어줌세!”

“열 석이나요?”

최풍원은 또 놀랐다.

아무리 하미라 해도 쌀 열 석을 쟁여놓고 있으면 청풍에서는 살림 택택한 알부자라고 소문이 날 일이었다. 그런 쌀을 스스럼없이 주는 함 대고는 대체 얼마나 부자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는 것일까. 장리로 빌려먹은 쌀 몇 말을 갚지 못해 그게 새끼를 쳐 한 섬이 되고 두 섬이 되자 낙담하여 목을 매는 백성도 있고, 관청에 잡혀가 치도곤 당할 것이 두려워 야반도주를 하는 백성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쌀 열 가마를 떡 하나 주듯 하는 함 대고가 최풍원은 부럽다기보다 다른 세상사람 같았다. 한양의 장사꾼은 시골 장사꾼과는 다른 것이 확실했다. 그들은 만지는 돈 액수부터가 달랐다. 한양에는 이렇게 넘쳐나는 것들이 많은데 시골구석에는 굶는 백성들이 속출하는 것도 불공평했다. 시골사람들은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 쉬지 않고 종일 꿈지럭거려도 먹고살기 힘든데 한양 사람들은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면서도 편하게 지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었다.

“최 대주, 앞으로 나와 함께 일을 해보시지 않겠는가?”   

“대고어른께서 받아만 주신다면 저는 감읍할 뿐입니다!”

“앞으로 북진본방 최풍원이 보낸 물건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나는 믿을 것이네!”

함길중 대고가 최풍원을 신뢰했다.

장사꾼들 생태가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함길중 대고 역시 평생 수없이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속고 속이며 살아왔다. 어쨌든 장사라는 것이 이문을 남겨야 하는 일이니 곧이곧대로 이야기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상대방을 현혹시키기 위해 간 빨리는 소리를 하다보면 마음에 없는 이야기는 당연지사였다. 그런 일을 평생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자기가 하고 있는 허한 소리를 진짜처럼 믿을 때가 있었다. 그런 것이 장사꾼들 일상사였다. 자신도 자신이 하는 말을 믿지 못하는데 남의 말을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장사꾼들이 믿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물건이었다. 함 대고가 최풍원을 신뢰하는 것은 최풍원의 물건을 보고서였다.

“대고 어른, 이 물건 좀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최풍원이 저고리 속에서 천삼 몇 뿌리를 꺼냈다.

“이건 천삼이 아닌가? 이런 귀한 것이 어디서 났는가?”

함길중 대고 역시 한눈에 천삼을 알아보았다.

“저희 고을 대전리라는 마을 삼입니다.”

“그쪽에도 삼밭이 있단 말인가?”

“그쪽에서는 개성삼보다도 대전 삼을 더 윗질로 칩니다요!”

“천삼이 이정도 나왔다면 그쪽 생삼이 어떠한지 짐작이 가는 구만!”

“대고 어른께 드리겠습니다요.”

“이걸 내게?”

“오늘 첫 거래를 한 정표로 드리겠습니다요.”

“젊은 사람 배포가 만만찮구만!”

“대주 어른께서도 쌀 열 섬을 주셨으니 저도 그 정도는 해야지요. 저도 염치 있는 놈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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