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물은 생명이다. 인간의 몸은 75% 이상이 수분(물)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밥은 굶어도 물을 마시지 않으면 며칠도 버티기 힘들기 때문에 물은 곧 생명이다. 우리는 매일 생명의 물을 마시면서 산다. 생수, 커피, 차, 음료수, 찌개 등을 통해서 수분을 보충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물이 어디에서 오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의 입으로 들어가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거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요? 라고 답하는 이도 있다.

산업화 이전의 시대에는 대부분 동네에서 물을 구했다. 동네의 우물이나 냇가 또는 작은 샘이 생명수의 원천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물터는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고, 역사의 장소가 되었다. 우물터를 차지하려고 싸우기도 하고, 우물터에서 대화와 사랑의 꽃도 피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곳도 우물가였다. 우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마을의 규모가 한정되었고, 여러 지역에 골고루 흩어져 살았었다. 오늘날 서울, 대전, 청주 등의 도시는 자연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구조이다.

지금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도시에 살면서 물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물은 생명의 근원처럼 귀한 것이 아니라 ‘돈을 물처럼 쓴다’는 표현처럼 흔하고 당연히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그렇게 불편함 없이 생활하고 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그냥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청댐과 충주댐에서 공급하는 것이다. 대청댐은 청주시, 대전시, 세종시, 천안시, 아산시, 공주시, 부여군 등 까지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한다. 충주댐은 경기도 이천시와 충북 충주시, 음성군, 진천군, 증평군, 괴산군까지 물을 공급한다.

우리나라 중부권의 70% 이상의 물을 두 댐에서 책임지고 있다. 대청댐이 아니면 대전시와 청주시가 지금의 인구와 규모를 갖추지 못했다. 세종시도 들어설 수도 없었다. 공장과 산업단지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 고마운 물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이들이 있다. 우리에게 물을 공급해주기 위해 30년을 넘게 재산권을 제한받고, 가난과 불편함 속에 사는 댐 상류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다.

그들은 낡은 집을 고치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객지에 나간 자식과 손주들이 찾아올 때 편히 쉬라고 사랑채를 만들고 싶어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다. 농산물을 가공해서 팔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데, 그 가공시설을 지을 수 없다. 이 모든 불이익이 다른 지역에서 마실 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불이익에 대한 보상으로 댐 발전금, 수계기금이 지원되고 있으나 오히려 주민 간 갈등을 불러왔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해 버렸다. 각종 환경규제로 농사밖에 지을 수 없지만, 70∼80세 이상의 노인분들이 대부분이라 그 마저도 힘에 겹다. 친환경농업은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포기하고 농약과 제초제를 뿌린다. 이렇게 오염된 물은 하류지역에 공급될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생명의 물은 수도꼭지가 아니라 댐 상류 주민들의 희생과 고통을 통해서 오는 것이다. 댐 상류지역이 친환경적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도시의 생명수도 더 이상 안전할 수 없다.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댐 하류지역에서 물 값을 제대로 지불해야 하고, 내 가족처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물을 마시고 설거지를 할 때 마다 상류주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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