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더듬거리다 쪽문 밖으로 나선 최풍원은 깜짝 놀랐다. 한길가로 난 허술한 상전과는 달리 그 뒤에 있는 집은 엄청나게 넓었다. 밭으로 친다면 나절갈이는 족히 될 정도로 널따란 마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넓은 마당에는 곳간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있었다.

“객주 어른, 집안에 무슨 창고가 이래 많은가요?”

“대궐에 쓰는 물건을 대주는 상전인데 여염집 곳간 같을까. 어디 대궐뿐인가. 한양에 웬만한 전들은 모두 여기서 물건을 받아다 쓰니 클 수밖에 더 있겠는가. 농삿집으로 치면 수 만석꾼 집보다도 더 클걸.”

“얼마나 큰 장사를 하면 이렇게 클 수 있나요?”

“부러운 게로구먼!”

“부럽기는 하지만 이렇게 큰 장사를 감당이나 할 수 있겠는가요?”

“세상일을 혼자 다 하려는가. 만석꾼이 그 넓은 땅을 지 혼자 일을 하는가. 소작인들이 각자 하지. 이런 큰 상전을 어떻게 주인이 다 하겠는가. 큰 부자는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거라네!”

윤왕구 객주의 말을 들으며, 최풍원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번 공납품만 해도 그랬다. 북진본방의 각 임방주들과 여러 상인들이 없었다면, 청풍같이 작은 마을에서 더구나 촉박한 시일 안에 그만한 물량을 마련하기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윤 객주! 먼 걸음 하셨네!”

곳간들을 지나 중늙은이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자 또 다른 집채가 나타났다. 그곳으로 들어서자 마당에 서있던 칠 척은 됨직한 키에 풍채 당당한 남자가 윤왕구 객주를 맞이했다.

“함 대고께서 이리 직접 납시니 시골 장사꾼이 몸 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윤왕구 객주가 일부로 허리를 굽실거리며 읍하는 시늉을 했다.

“손바닥만한 전 하나 있는 장돌뱅이한테 대고는 무슨!”

함길중 대고도 따라 읍을 하며 농을 했다.

“함 대고가 그리 말하면 조선 팔도 거상은 하나도 없겠소이다!”

“남 보기에 비슴이나 그렇지, 실속은 윤 객주가 더 실하면서 그러오!”

“그나저나 공납품은 다 보았소이까?”

“그런데 이 젊은이는 누군가?”

윤왕구 객주의 물음에 대한 답 대신 옆에 있는 최풍원이를 되물었다.

“내 정신 좀 보게! 이 사람은 이번에 산나물하고 약재하고 황쏘가리를 공납한 청풍 북진본방 최풍원 대주라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아 이번에 동행을 했네. 최 대주, 인사 여쭙게!”

그제야 윤왕구 객주가 함길중 대고에게 최풍원을 인사시켰다.

“함 대고 나리, 최풍원이라 하옵니다.”

최풍원이 정식을 예를 갖춰 읍을 했다.

“하찮은 장사꾼에게 읍은 무슨! 역시 양반 곶에서 온 사람들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구만! 예서 이럴게 아니라 안으로 드시게!”

함길중 대고가 손사래를 치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함 대고가 두 사람을 방으로 들자고 했다.

“그래 물건은 마음에 드는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윤왕구 객주가 이번 공납품에 대해 물었다.

“충청도 사람들 느긋하다고 누가 그러던가? 범이라도 쫓아오는가, 뭐가 그리 급한가. 숨이나 돌리고 천천히 하세나!”

“촌사람이 도성에 오니 맘이 급해 그러네!”

“이번 물건들 정말 마음에 드네!”

함 대고가 매우 흡족해 했다.

“우리 충주 물건은 지난번 약조했듯이 물건으로 가져가면 되겠고, 여기 최 대주네 물건들이 얼마나 되겠는지?”

윤왕구 객주가 북진본방 공납물품에 대해 물었다.

“어떤 물산들이지?”

“산나물, 약재, 물고기, 꿩입니다요.”

최풍원이 대답했다.

“산나물이라……참나물·취나물·고사리·엄나무·오가피·원추리·씀바귀·달래·돌나물하고, 약재는 황기고, 물고기는 쏘가리하고, 고기 말린 것이고, 꿩이구만.”

함길중 대고가 탁자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종이 중에서 하나를 찾아 읽었다. 거기에는 최풍원의 북진본방에서 공납한 물목이 그대로 적혀있는 모양이었다.

“벌써 다 들였는가?”

“벌써가 다 뭔가? 이미 수라간으로 다 들어갔다네!”

“벌써 대궐로 다 들어갔단 말인가?”

“워낙에 일을 깔끔하게 해줘서 우리가 다시 손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네!”

함길중 대고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해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