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예술가는 가난해야한다는 말은 더 이상 현실성이 없다. 치열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예술 활동도 어렵다. 그렇다고 돈이 예술을 지배하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돈과 예술이 아닌 예술과 돈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얼마 전 스물세 살이 된 홍명희문학제를 마쳤다. 23년이란 세월 동안 홍명희문학제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정치적, 이념적 논쟁에 휘말리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행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홍명희문학제는 정부나 관의 지원 없이도 지속하였고, 빨갱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어떠한 역경도 홍명희문학제의 의미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돈에 따라 의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분통 터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 권태응시인 탄생 100년을 맞아 적지 않은 지원금이 생겼다. 충주시는 충주의 모 기관에 권태응문학제 추진위원회의 구성 권한을 주었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원활히 사업을 추진해야 할 기관은 엉뚱하게도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태응문학제 역시 사업비 측면에서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행사이다. 진정으로 권태응의 삶과 문학에 존경을 표하는 지역의 후배 작가들이 없었다면 현재까지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돈이 생기니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모양을 보니 분통이 터진다. 오래전 권태응 어린이 시인학교를 마치고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로비를 해서라도 사업비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과 사업비가 느는 만큼의 폐해가 더 크다는 의견이 있었다. 대부분은 후자에 방점이 찍혔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현재 오장환문학제는 관이 주도하면서 예전보다 규모가 커졌다. 그러면서 특징 없는 문학제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미친다. 관이 예산을 편성하기 전까지 참여하였던 많은 이들이 발길을 끊은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홍명희문학제는 괴산에서 열려야 맞다. 그러나 홍명희는 괴산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선거에 민감한 지역 단체장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몇 해 전인가 홍명희문학제에 괴산군의 지원 계획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결국 무산되었지만, 주인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홍명희문학제가 넘어갈 뻔한 일도 있었다. 홍명희 선생이 괴산 출신이니 당연히 괴산 지역민이 행사를 추진해야 하는 것이 맞다. 다만, 홍명희는 없고 양주 출신 임꺽정이 고추를 들고 있는 현 세태를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당시 군의 지원이 무산되지 않았다면 현재 홍명희문학제는 어떠한 모습으로 변했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예술은 돈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예산 없이 사업을 추진하기도 어렵다. 조건 없는 지원정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도 드물다.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이들도 도처에 깔려있으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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