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변어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상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변어가 쓰이기도 했다. 같은 둘을 얘기하더라도 어떤 상전에서는 ‘사(些)에서 탈 차(此)’라 하고, 인불인(仁不人)이라 하여 ‘인(仁)에서 사람 인(人)이 아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나는 천불대(天不大), 셋은 왕불주(王不柱), 넷은 죄불비(罪不非)……라는 식이었다.

“한양 장사꾼은 글도 알아야 하겠구려. 글 모르는 촌사람은 한양 와도 장사꾼도 못하겠구먼요.”

최풍원이 여리꾼을 추켜세웠다.

“나도 일자무식이었지만 워쩌겠슈, 먹고 살리니 익혀야지. 그거 몇 자 외는데도 수월찮이 진땀을 뺐다오!”

“그러셨겠소! 그런데 아까 양반과 같이 왔던 사내가 돈을 슬쩍 빼돌리는 것 같던데 그건 뭐요?”

최풍원은 좀전 선전에서 여리꾼과 흥정을 끝낸 산내가 밖에 서있던 양반에게 돈을 받았다 값을 치르고는 괴춤에다 엽전을 넣던 것을 떠올리며 물었다.

“뭐긴 뭐요. 떼어먹은 거지!”

“떼먹다니요?”

“지체 높은 양반님네가 우리 같은 상것들하고 직접 흥정을 하며 말을 섞겠슈? 그러니 흥정을 할 아랫것들을 항시 데리고 다니지유. 아까 나와 흥정을 했던 사람은 양반집 집사쯤 되겠지유. 그 집사와 처음 흥정할 때 내가 스무 닷 냥을 달라고 했는데 스무 한 냥에 샀으니 넉 냥을 깎았다고 생각했을 것 아니겠슈. 그러니 거기에 한 냥을 붙여 자신이 꿀꺽 한 것 아니겠소.”

“아니, 주인이 상전 밖에 서서 뻔히 보고 있는데 돈을 해먹는단 말이요?”

“마주 보고 있어도 해먹을 판에, 밖에 서있는 주인 속여먹는 것이야 애 손에 들린 엿 아니겄소?”

여리꾼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한양은 참 대단한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참 대단했다. 별의별 일로 먹고사는 사람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입으로만 먹고사는 사람, 문밖에 주인을 세워놓고도 버젓하게 속여먹는 사람,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무슨 일인가를 하며 먹고 살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누군가가 한양에서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고 하더니만 그 말이 맞았다. 최풍원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한양의 모습에 흥미가 일었다.

“최 대주, 그만 일어서세! 함 대고를 만나고 칠패 가서 유필주를 만나고 삼개까지 가려면 빠듯하겠네.”

윤왕구 객주가 최풍원을 재촉했다.

“수인사도 제대로 못 나눴는데, 소간이 있어 일어나야겠소!”

“초면에 술만 얻어먹고, 낯이 없슈! 혹여 다음에라도 시전에서 만나면 내가 한 잔 사리다. 잘가슈!”

최풍원이 일어서자 여리꾼이 앉은자리에서 지나가는 소리처럼 말했다.

윤왕구 객주와 최풍원은 피전거리 주막집에서 나와 곧바로 함길중 대고 상전으로 갔다. 소문과는 달리 한 대고의 상전은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대궐에 공납품을 전담하고, 웬만한 관리들은 쥐고 흔든다는 함 대고 상전의 외형을 보고 최풍원은 솔직히 실망했다. 조선에서도 몇 째 손가락에 든다는 함 대고의 상전이 시전거리의 다른 상전보다도 영 부실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썰렁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왜 생각했던 상전이 아닌가?”

윤왕구 객주가 함 대고네 상전으로 들어서며 최풍원의 표정을 살폈다.

“아닙니다요!”

최풍원은 입으로는 그리 말하면서도 표정에 나타나는 속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대고 어른은 안에 계시는가?”

윤왕구 객주가 최풍원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상전에 있던 중늙은이에게 물었다.

“그렇잖아도 아까부터 객주 어른을 기다리고 계십니다요!”

중늙은이가 윤왕구 객주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래 그간 잘 지내셨는가?”

윤왕구 객주가 중늙은이에게 안부를 물었다.  “지야 덕분에 잘 지냅니다요. 객주어른 안으로 드시지요?”

중늙은이가 윤왕구 객주를 안내했다.

중늙은이는 어둠침침한 상전을 요리조리 지나 큰길 반대편으로 나있는 쪽문을 열고는 그리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빛에 잠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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