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거리나 그거나 돈버는 방법이 비슷합니다.”

여리꾼 이야기를 들으며 장사하는 방법이 이치는 거기서거기라는 사실을 어렴풋 최풍원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거나 그거나 돈 벌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거유.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쥐뿔도 없는 우리네는 알아도 쥔 게 없으니 이래 사는 거유.”

여리꾼이 체념한 듯 말했다.

“그래도 형씨는 걱정 없겠소이다.”

최풍원이 여리꾼에게 말했다.

“무슨 말이슈?”

“형씨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재주를 파는 것이니 물건 금이 오르든 말든 상관도 없고, 그 재주야 누가 가져갈 수도 없는 것이니 얼마나 좋소?”

최풍원 생각에는 무거운 물건을 지고 다닐 필요도 없이 말로만 순식간에 뚝딱 한 냥을 버니 여리꾼보다 편한 장사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 없으니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염려도 없었다. 그야말로 만년구짜에다 마를 것 없는 화수분이었다.

“누가 가져갈 재주나 됩디까. 이거 가져가 뭘 한답디까. 오죽하면 손바닥만한 자리도 없고, 팔 물건조차 없이 종일 장바닥을 전전하며 사람들 눈총 받으며 이렇게 살겠슈. 우리같이 천한 놈들이야 평생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으니 그런 눈총 따위도 이젠 여사가 되었지만 이 짓도 얼마나 더 하게 될지 모르겠다오. 이것도 매기가 좋아야 여리도 많이 버는 데, 매기가 없는 데 여리꾼 일인들 많겠소?”

“그도 그렇겠구려.”

“이건 장사도 아니고 장사꾼이 할 일도 아니오. 장사가 물건을 팔아야지, 입만 가지고 하는 장사가 무슨 장사겠소. 여리꾼은 하다하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막벌이꾼이나 하는 하루살이요. 그깟 게 뭐 그리 궁금하슈.”

최풍원이 관심을 가지자 여리꾼이 외려 무안해 했다.

“그런데 아까 선전 주인과는 뭔 얘기를 한 것이오?”

최풍원이 다시 선전 주인과 여리꾼이 나눴던 뜻 모를 말에 대해 물었다.

“그건 변어라는 거유. 상전 주인과 여리꾼 사이에 정해놓은 우리들만의 말이란 말이유. 아까 사 자에서 탈 차를 해도 되겠느냐고 한 말은 선전 주인이 받을 비단 값을 물어본 것이고, 그것을 손님이 알면 안 되니까 변어를 쓴 거고, 주인이 받아야 되는 비단 값에 내 구전을 붙여 손님에게 판 것이오.”

“탈 차가 뭔데, 그것으로 선전 주인이 받을 비단 값을 안단 말이오?”

최풍원은 도통 여리꾼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젊은 양반이 궁금한 것도 많소. 그깟 걸 배워 뭘 하려 그러슈!”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장바닥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두면 언제고 요긴하게 써먹을 일이 있지 않겠소이까. 그러니 알려주시구려!”

“그것 참!”

여리꾼이 난처해하더니, 변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리꾼이 물건을 사려는 손님과 상전 주인 사이에서 자기 몫을 챙기려면 주인이 팔려는 가격을 먼저 알아내서 그보다 비싼 가격에 팔아야 했다. 그러므로 손님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암호를 사용해 가격을 알아냈는데, 이 암호가 변어이다. 상전 주인과 여리꾼 사이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둘 만이 통하는 약속된 숫자가 있었다. 일테면 하나는 잡(帀), 둘은 사(些), 셋은 여(汝), 넷은 강(罡), 다섯은 오(吾), 여섯은 교(交), 일곱은 조(皂), 여덟은 태(兌), 아홉은 욱(旭)이었다. 한자의 뜻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이 한자의 자와 획을 분리하는 파자를 이용하는 것이 변어였다.

여리꾼이 선전 주인에게 사(些)에서 탈 차(此)하면 되겠느냐고 말한 것은 사에서 차를 빼버리면 되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사에서 차를 빼면 이(二)가 남으니 둘을 뜻하는 것이고, 주인이 받으려는 비단 값은 스무 냥이라는 말이었다. 선전에서의 비단 한 필 값은 열일곱 냥이 원가였다. 주인은 여기에 석 냥의 이문을 붙여 스무 냥에 팔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리꾼이 흥정을 붙여 스물한 냥에 비단을 판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인에게 한 냥은 더 남은 이익, 즉 여리였고 이를 손님을 데리고 와 흥정을 성사시킨 여리꾼에게 준 것이었다. 주인 입장에서는 여리꾼 덕에 앉아서 물건을 파니 좋은 일이었고, 여리꾼은 말품을 팔아 돈을 버니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이것은 주인과 여리꾼이 받을 물건 값을 정하는 것을 손님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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