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이 아니라 순전히 날강도일세!”

“그뿐인 줄 아슈? 돈을 받을라고 계속 찾아갔더니 나중에는 나를 포청에다 투서질을 했지 뭐유!”

“포도청에? 왜?”

“삼개 난리를 일으켰다고!”

“여리꾼이 난리를 일으켰다고요?”

“먹지도 못하는 쌀을 가져다 모래를 섞어 판 놈이 저 놈이라고 덮어씌운 거유! 내 아무리 먹고사는 게 다급해도 먹는 쌀에다 모래를 집어넣는 그런 천벌 받을 짓거리는 못하오. 세상에 먹는 거보다 중한 게 어딨소? 사람이 먹고사는 건데, 그런데다 못 먹을 걸 넣는 놈은 말종도 상말종이지! 안 그렇소?”

“그래 어떻게 됐소이까?”

“붙잡으러 오면 잡혀가야지, 우리 같은 것들이 무슨 힘대가리나 있겠슈!”

“그래 가서 무고함을 토로했소?”

“하미전 주인의 죄는 알렸소이까?”

듣고 있던 윤왕구 객주와 최풍원도 결과가 어찌되었는지 궁금해 연달아 물었다.

“포청에서 우리 같은 것들 말을 들어나준대유. 또 상전 주인들과 포청은 한통속인데 죄를 말하면 잡아올 것 같슈. 가뜩이나 세상이 어수선한 시절에 풍속만 어지럽힌다고 곤장만 맞았지유.”

“끝내 돈은 잃어버렸구려.”

“지 놈들도 얻어 처먹은 것이 숫한데, 저들 편을 들지, 우리 같이 쥐뿔도 없는 것들 사정을 봐주겠슈? 양반이나 있는 것들이나 이 나라 백성이지, 우린 백성도 아니유. 억울해도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맨날 당하는 건 벌레 같은 우리 미물뿐이유!”

여리꾼은 돈을 잃은 것보다도, 잘못도 없이 가진 게 없다는 죄로 당하기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더 억울했다.

“조선 땅에서 양반으로 태어나지 못한 게 죄라면 죄지, 무슨 죄가 있겠소?”

“요샌 양반보다도 돈이라우. 돈만 있으면 장사꾼도 양반을 부리며 산다우. 양반 위에 돈이우!”

“참으로 세상도 많이 바뀌었소!”

“그렇게 세상이 바뀌었어도 안 바뀌는 게 있슈. 개뿔도 없는 우리 처지는 이래도저래도 맨날 한가지유! 그러니 손에 쥔 것 하나 없는 맨 거시기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슈.”

“그래서 여리꾼이 되었구랴?”

“아무리 없는 놈이라도 산 입에 거미줄 칠 수는 없지 않소? 뭐라도 해야지. 한양에 올라와 장바닥에서 굴러먹었으니 아는 짓이라고는 이것밖에 없고 하는 수없이 시전을 다니며 등 너머로 배운 걸 쥐어짜 이 길로 들어섰지유.”

여리꾼은 그래서 시전에 빌붙어 말품을 팔며 사는 것이었다.

“그래도 용하구려. 그런 재주가 있었으니.”

“이래도 내가 어릴 때부터 얘기 하나는 잘한다고 동네에서 뜨르르했슈!”

윤왕구 객주가 추어주자 여리꾼이 으슥해했다.

“한양에 가면 떨어진 것만 주워 먹어도 굶지는 않는다는 말도 옛말이유. 사람들만 달박달박하지 도통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이 짓도 오래 하지 못할 것 같아 맨날 불안하다우!”

여리꾼은 묻지도 않은 말을 푸념처럼 내뱉었다. 윤왕구 객주가 권하는 탁주 서너 대접을 마신 여리꾼이 술기운이 오르자 경계심을 풀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성 안만 화려하지 실속이 없소! 성 밖만 나가보시오, 조선팔도에서 몰려든 백성들이 지어놓은 움막이 산을 이루고 있소. 포청에선 그런 백성들을 잡아놓고 경저리들을 시켜 각자 고향으로 끌고 가라하지만 끌려 내려가는 사람보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더 몰리니 사대문 밖만 나가면 늘어나는 건 움막뿐이라오!”

“그 사람들이 다 뭘 해서 먹고 사는 거요?”

“그러니 문제 아니랍디까? 일은 없는데 사람은 늘어나고, 그러다보니 하루에 한 냥 벌던 게 닷 푼으로 줄고, 닷 푼이 서 푼으로 줄고, 서푼이 십전으로 주니 당장 입에 들어가는 것조차 줄일 판인데 무슨 매기가 있겠슈.”

“그래도 육전거리 상전에는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그득그득 쌓여있지 않소?”

“형편이 좋든 나쁘든 못 사는 백성들이 문제지, 양반들이나 돈 많은 부자들이야 무슨 걱정이 있겠슈? 외려 그런 사람들은 지금이 더 호시절일 거유!”

“어째 그렇소?”

“생각을 해보슈. 거래가 안 돼 매기가 떨어지면 물건 금은 내려갈 테고, 그러면 돈 있는 양반님네나 장사꾼들은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을 사서 쟁여놓을 수 있지 않겠슈. 우리네야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도 빠듯하니 쟁여놓을 수도 없지만, 있는 사람들은 그런 걱정 없으니 사놓고 마냥 기다리다보면 언젠가는 다시 금이 오를 것이고 그때 물건을 쏟아놓으면 큰 돈을 챙길 게 아니겠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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