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윤 기사! 의원님 지각하시겠어. 버스 전용차선으로 들어가. 그리고 밟아.”

“네.”

야당 국회의원 김상민! 남들처럼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도 아니며, 명문대 출신도 아니다. 그저 뚝심 하나로 정의롭게 살아가고자 했던 소신이 금배지를 달게 했다.

지난 토요일 지역구에 내려가 장애인 예술단체 행사와 근로자들의 체육대회에 참석해서 같이 뛰고 즐겼다. 일요일 저녁엔 고향 친구들을 만나 금년도 농사 작황을 살피고 그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어야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피곤하기만 하다.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제일 먼저 선영을 찾았었다. 문중에 경사 났다며 몰려든 집안 어른들은 너나없이 청탁하기에 바빴고 6촌 동생을 보좌관에 임명해 달라는 거였다. 보좌관 임명은 자신의 권한이지만, 6촌 동생은 의회 업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고민 끝에 고등학교 3년 선배를 보좌관에 임명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지만, 공사(公私)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 일을 두고 문중 어른들의 노여움을 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형님! 며칠 후에 있을 국감 질의 내용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네. 질의할 내용 모두 챙겨 두었습니다.”

“다음은 만국당 국회의원 김상민 위원 질의해주십시오.”

국토부 상임위원장의 소개가 끝나자 김상민 의원이 마이크 앞으로 걸어 나와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국감 하면 증인을 불러 호통치고 인신공격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지적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질의에 앞서 증인을 신청하겠습니다. 고속도로순찰대 염상득 경사님 앞으로 나오세요.”

국감장을 가득 메운 여야 의원 및 기자, 증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금껏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굵직한 신분을 가진 대기업 총수이거나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증인은 나를 기억하십니까?”

“네, 기억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저, 그게….”

“좋습니다. 제가 증거 영상을 틀어드리겠습니다.”

국감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는 차들로 꽉 막힌 한남대로, 버스 전용차선에는 씽씽 달리는 버스의 모습이 보인다.

“보좌관님! 경찰차 따라오는데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룸미러를 바라보며 운전기사가 보좌관에게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다.

“앞에 가는 12가 0000호 승용차 갓길로 빠진 다음 정차하세요.”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김상민 의원 귀에까지 들려왔다. 순찰차가 비상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갓길로 유도한다.

“충성! 버스전용 차로를 달리셨습니다. 벌점 15점, 과태료 6만원 부과 되겠습니다.”

“이차는 만국당 김상민 국회의원님 차입니다. 오늘 국감이 열리고 있어서 차는 밀리고 어쩔 수 없어 그랬으니 좀 봐주세요.”

운전기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사정을 한다.

“그러시군요. 하지만, 저는 법령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자네 어디 소속이야?”

그때까지 서류만 들여다보고 있던 김 의원이 갑자기 나섰다. 평소 그 답지 않은 행동에 운전기사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하다.

“네. 고속도로순찰대 경사 염상득입니다.”

“왜 그리 사람이 답답해? 그러니까 여태 경사 계급장을 달고 있지.”

“네?”

화면에는 조금 전 증인으로 나온 염상득 경사의 모습이다.

“없던 일로 해.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그래.”

부동자세로 서 있던 경찰관이 더욱 긴장하는 눈치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점은 의원님이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과태료 부과하게 해주십시오.”

“이사람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들어. 이거 내 명함이야. 내가 시경 국장에게 전화해서 진급시켜주라고 할 테니까?”

“왜 이러십니까? 누구보다 법을 더 잘 지켜야 할 의원님이….”

“내가 과태료 6만 원이 없어서 그러는 줄 아나. 늙은 당신 이 고생하는 것을 면하게 해주려고 그러는 게야.”

“그런 부당한 방법으로 승진하고 싶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알았어, 내 당신의 그 오만함 똑똑히 기억했다가 한 번에 갚아주지. 윤 기사 과태료 끊어.”

영상 여기서 멈춘다.

“영상 꺼 주세요.”

“저런, 염치없는 짓을 해놓고 웬 증인?”

여당 의원석에서 야유가 들려왔다.

“김 의원 딱지 한 장 안 끊으려고 별짓을 다했구먼. 그러고도 국민의 공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퇴하세요.”

“좋습니다. 이제 말씀드리지만, 저는 저 영상을 찍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참된 경찰관 염상득 경사님에게 커다란 누를 끼쳤습니다. 그 점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경찰관들의 노고가 심하다는 말을 듣고 연극을 좀 했습니다. 제 말을 믿지 못한다면 그 일을 꾸민 우리 보좌관과의 영상을 공개하겠습니다. 증인에게 묻겠습니다. 고속도로 순찰대 근무하신 경력이 얼마나 됩니까?”

“2년 7개월 되었습니다.”

“그날 제가 한 말, 물론 꾸민 연극이었습니다만 불쾌하셨지요?”

“그보다 더 심한 말을 하는 분도 많았습니다.”

“어떤?”

“의원님처럼 승진시켜 주겠다는 말은 기본이고 원하는 자리로 보내주겠다. 아들을 취업시켜 주겠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범칙금을 내지 않으려고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의정 활동, 또는 고위 공직자의 품위 손상, 청문회 등에서 교통법규 불이행 등이 알려 질까 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의 직함이나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아니요. 기억하려고도 않았고, 그분들의 제안도 믿지 않았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저 염상득 경사님같이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이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찾아내 승진시키고 우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첨을 일삼고, 눈앞에서만 잘 보이려고 하는 일부 지각없는 공직자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야당 의원들과 증인들의 박수갈채가 요란하게 국감장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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