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충남 금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절한 중봉(重峯) 조헌선생(1544∼1592)의 시집이 400여 년 만에 한글로 번역돼 출판됐다.

중봉선생은 충북 옥천의 인물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인물이다.

옥천문화원과 중봉조헌선생기념사업회는 지난달 30일 옥천에서 ‘완역 중봉시 역주’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번에 ‘중봉집’ 1, 2권의 시를 한글로 번역하고 주석을 단 것은 후학들에게 큰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중봉이 순절한지 꼭 412년만이기 때문이다.

중봉문집 초간은 1615년(광해군 7)에 간행됐다. 1740년(영조16)에 20권 10책으로 발간한 데 이어 1934년 전주 광문당에서 중간했는데 이게 갑술본(甲戌本)으로 불리는 중봉집이다. 그 뒤 충북대 출판부와 탐구당에서 중봉집의 내용을 편집·번역한 ‘중봉전서’와 ‘불멸의 중봉조헌’에는 시가 극히 부분적으로 번역돼 실렸을 뿐 전문이 완역되고 주석을 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시(漢詩)는 한글로 옮기면 이미 그 맛을 잃게 된다. 완역본은 자의적 의역을 삼가고 우리 정서에 맞는 전통적 절주에 유의해 원집형태를 최대한 살렸다. 중봉의 시를 통해 원작자가 전달하려는 근본 뜻을 가장 가까이 다가서게 하기 위해서다.

율곡의 제자로서 스승의 학문과 정신을 잇기 위해 옥천 후율정사에서 제자를 훈도 했던 중봉의 일생은 가난과 박해의 시련 속에서도 개인의 부귀와 명리를 떠나 국가안위와 민생구제에 앞장섰다. 그의 시에는 도학자요 사대부로서 참되고, 고매한 인품과 충효의 정신이 꽉 차 넘치고, 문학적 향기가 격조 높게 물씬 배어나고 있다.

2005년 을유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16세기 당시 일본이 조선을 집어 삼키려했던 백척간두의 위기나 지금이나 국내외 정세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중봉은 국가의 누란지세를 온몸으로 막아내려 했다. 그의 불굴의 의지와 기개는 이념·세대·계층·지역·정파 등을 초월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후세들이 중봉시집 완역본을 읽어 현세를 바로 보는 교훈으로 삼고, 국가사회의 앞날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 돌아보는 것도 중봉을 기리는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