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년… 충북 5인 애국지사 ‘혼’ 본받자
광복 60년… 충북 5인 애국지사 ‘혼’ 본받자
  • 이대익 기자
  • 승인 2005.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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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국가보훈처가 실시한 ‘국민보훈의식지수’ 설문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보훈의식 지수’는 평균 62.5점으로 나타났다.
보훈처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매우 아쉬운 수준’이다.
특히 ‘주요 보훈인물과 행적에 대한 이해도’는 36.3점으로 매우 낮아 보훈인물의 행적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올해로 광복 60주년을 맞았다. 과거를 규명하고 역사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국을 찾기 위해 풍찬노숙을 하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던 독립애국지사들의 행적을 돌아보고 그 높은 뜻을 되살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선행돼야 할 것이다.
충청매일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충북도내 생존 독립유공자들의 행적을 되짚어보고 그들의 근황을 알아봤다. 현재 전국적으로 생존해 있는 독립유공자는 187명이다. 그 중 충북에는 5명만이 남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대구사범 재학 때 다혁당 조직 항일운동
2년 여 고문 받고 3년 6개월간 옥고 치러

▷최영백 지사(83)=“박 대통령은 최선을 다해서 산 것 뿐이야. 소학교 교사로 뭘 할 수 있나. 그걸 깨닫곤 만주로 일본군에 입대한 거야. 그걸 친일이라곤 할 수 없지.”

선배의 친일논란에 대해 독립유공자 후배는 담담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최영백 옹(83·건국훈장 애국장·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3년 후배다.

대구사범 재학 중인 1941년 2월 동교생 권쾌복·배학보 애국지사 등 15명과 다혁당(茶革黨)을 조직, 항일 학생운동을 펼쳤다.

다혁당은 같은 학교의 항일학생조직인 ‘문예부’와 ‘연구회’가 회원들의 졸업으로 해체될 형편에 놓이자 이를 계승·발전시킨 결사(結社)로 문학·미술·학술·운동 등 각 분야에 걸쳐 실력을 양성해 조국독립을 촉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조직됐다.

이들은 민족차별 교육에 반대해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의 차별대우 철폐를 위해 노력했다.
최 옹은 이 같은 항일 활동이 일본 경찰에 적발돼 같은 해 7월 구속됐으며 2년여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1943년 11월 징역 2년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최근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과거사 진상규명 논란에 대해서는 “과거의 진상은 밝혀져야지. 그러나 그걸 자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잖아.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최 옹은 충북 교육계의 산 증인이다.

대구사범을 마치고 청주대를 졸업한 후 교육계에 투신, 충북도교육청 학무국장과 단양·진천·청원군 교육장을 역임했다.

최 옹은 “현 김천호 교육감도 까마득한 후배지. 내가 어디 교육장할 때 장학사로 근무했어”라고 소개한다.

교육자답게 청소년들에 대한 당부의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청소년들이야 말로 조국의 미래야. 아무리 어렵고 딱한 처지에 놓여 있어도 청소년들은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며 건강을 다지고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 해”라고 당부한다.

최 옹은 몇 년 전 중풍으로 쓰러졌다 다시 회복했지만 현재도 당뇨와 심근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네 분은 세월에 묻힌 채 노환으로 투병

광복된지 벌써 60년이 지났다.
일제의 모진 박해도 견뎠던 애국지사들도 세월만큼은 비껴갈 수는 없었다.
아쉽게도 충북도내 생존 애국지사 중 인터뷰가 가능한 사람은 최영백 옹 뿐이었다.
나머지 4명은 심각한 노환으로 투병 중이었으며 의식불명인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기독교 중심 3·1운동 일으켜

▷오상근 지사(80)=1909년 신민회 계열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안희제(安熙濟), 이원식(李元植), 남형우(南亨祐), 이시열(李時說), 배천택(裵天澤), 박중화(朴重華) 등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조직해 활동했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기독교 장로교의 조사(助事)로 있으면서 3·1 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해 1919년 2월20일 서울 함태영(咸台永)의 집에서 함태영, 이갑성(李甲成), 안세환(安世桓), 현 순(玄 楯) 등과 함께 기독교 중심의 3·1 운동을 일으켰다.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이 기독교 대표 이승훈(李昇薰)과 천도교 대표 최 린(崔 麟) 사이에 합의된 날인 2월21일 밤에는 기독교와 천도교의 연합을 승인하는 장로교 측 대표와 감리교 측 대표의 회의에 장로교 측 대표의 임원으로 참석해 연합을 승인하고 기독교 측의 지역 책임자를 선정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최근 중풍으로 쓰러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우성연립 나-105호·☏533-2309)

日 패전 뜻 노래… 반일학생 낙인

▷박종철 지사(이명 박선영·78)=청주 출신으로 1940년 3월 청주제일공립중학교(淸州第一公立中學校)에 재학 중 일본의 식민정책에 반대하며 신사참배(神社參拜) 및 궁성요배(宮城遙拜) 등을 기피하기 위해 동지들을 규합했다고 한다.

그러나 1942년 5월5일 개교기념일에 전교생이 와우산(臥牛山)으로 등산·행군하던 중에 일본의 패전을 뜻하는 노래를 부른 것이 청주경찰서에 탐지돼 조사를 받게 되고 그 사실을 밀고한 일본인 동급생 택전조(澤田操)를 4주 간 치료를 받게 하는 구타를 함으로써 반일학생으로 지목돼 일경에 체포됐다.

1942년 12월11일 대전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상해(傷害) 사건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언도 받고 공소를 제기했으나 1943년 1월29일 경성 복심법원에서 기각됐다.

인천 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 효성2차A 101-1103·☏211-3835)

日 유학 중 독립운동단체 결성

▷임병철 지사(80)=청원(淸原) 출생으로 1940년 4월 일본 동경(東京)에 있는 조도전고등공학교(早稻田高等工學校)에 입학한 뒤 그 해 5월 경부터 오태호(吳泰浩)·최세표(崔歲杓)·양응석(梁應錫) 등과 함께 자주 회합을 갖고 일제의 내선일체정책(內鮮一體政策)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한편 민족차별정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독립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데 합의해 민족독립운동을 위한 결사체로서 표면 상 학술연구를 표방한 민족주의 단체를 결성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10월 중순경 동경시내 판교구(板橋區) 풍옥정(豊玉町) 오태호의 집에서 학술연구를 표방한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동지로서 헌신하기로 맹약했다.

항일결사 조직 후 단원들과 모임을 자주 갖던 그는 민족해방을 위한 조직 확대 강화, 단결력 강화, 동지 규합, 민족의식 고취·앙양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1941년 10월11일 동경 경시청(警視廳)에 체포돼 1942년 4월4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동경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돼 옥고를 치렀다.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506 시영A 102-302·263-6880)

도내 최고령… 정진군서 활약

▷이병돈 지사(이명 이철수·90)=도내 최고령 독립애국지사로 현재 대전 보훈병원에 입원 중이다.

고향은 함남 신흥. 1942년 1월 광복군 제2지대 낙양(洛陽) 지구 초모공작특파원 서 곤(徐崑)·이욱승(李旭昇)과 접선, 일군 점령지를 탈출한 후 같은 해 2월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이부가(二府街)에 있는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신국빈(申國彬)·왕태일(王泰日) 등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체력연마를 위해 광복군 제2지대 체육부가 신설될 때 초대 체육부장에 선발돼 중국 전 서북구 축구대회에 왕 형(王衡 : 安椿生)·장덕기(張德祺)·한 광(韓光) 등과 함께 출전해 마침내 결승에 진출, 중국군관학교팀과의 결승전에서 맹활약, 우승하게 되었다.

1945년 4월 한미합작 O.S.S 훈련반에 입교, 특수무기반을 수료하고, 국내 정진군 사령관 이범석(李範奭) 휘하에서 정진명령(挺進命令)을 기다리던 중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8·15 광복을 맞이해 1946년 6월 전지대원과 함께 귀국했다.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 산48-1·☏295-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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