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영국의 역사학자 카아가 한 말,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명제를 ‘조선의용대’보다 더 또렷이 보여주는 사례도 없습니다. 과거는 있는데, 그것을 읽을 현재가 없을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그 과거는 현재로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현재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왜 과거 ‘사실’은 있는데, 읽는 ‘현재’는 없는 걸까요? 그것은 그것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력들이 현재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한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장악할 때 그 밑에서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사실’을 읽기 두려워합니다. 이런 두려움을 떨치고 읽어야 할 것을 읽는 용기를 내는 자가 진정한 학자의 정신을 지닌 사람일 것입니다.

이 책은 베이징 대학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중국 내 항일 유적지를 답사하고서 쓴 기행문입니다. 여러 지역의 항일 유적지가 다 소개되었지만, 특히 조선의용대가 활동했던 지역이 중요하게 소개된 것이 특징입니다. 그 만큼 조선의용대는 우리에게 낯선 존재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으로부터 시작해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인가를 받은 항일 조선 독립군 거쳐, 중국내의 급격한 항일 전쟁 판도 변화에 따라 팔로군으로 편입되고, 만주지역의 항일 활동을 도맡다가, 마지막에는 북한 군대의 토대를 마련하고 한국전쟁까지 참여하는 조선의용대. 그리고 전쟁의 책임을 지고 북한으로부터 토사구팽당하고, 남한으로부터는 빨갱이로 몰려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행적을 보였으면서도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감쪽같이 증발해버린 슬픈 이름입니다.

해방 후의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본다면 일제강점기하 한국의 독립전쟁은 남한이나 북한의 실세들이 아니라, 남북한에서 모두 버린 이들 조선의용대일 것입니다. 50년밖에 안 된 짧은 과거를 되돌아보면 그것을 되돌아보는 자의 왜곡된 이념으로 하여 남북한의 현재 교과서대로 보이겠지만, 좀 더 길게 100년 200년 뒤의 냉정하고 성실한 눈으로 보면 해방 전의 독립운동사는 이들 조선의용대가 가장 중요한 자리를 채울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빕니다.

이 책은 그 조선의용대의 발자취를 가장 친근한 갈래인 기행문의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역사 이야기이지만, 학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발품을 팔아가며 현장을 돌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오히려 역사책보다 더 생동감도 있고 현실감도 있습니다.

이 책을 말하자면 김영민 선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서문을 쓰기도 했지만, 올초(2014) 청주를 방문한 김영민 선생을 김조영 선생의 소개로 알게 되었고, 글쟁이인 저는 만난 김에 그 동안 제가 쓴 허접한 책을 몇 권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잊지 않고 김조영 선생을 통해서 저에게 이 책을 전해온 것입니다. 받자마자 책을 읽으며 저도 어느덧 글쓴이들을 따라 타이항산으로 화북으로 임시정부 청사로 돌아다니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생각하면 역사는 인연을 통해 이루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카아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지만, ‘현재’란 사람의 현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현재’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그 한계와 문제점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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