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조정숙

 

캘리포니아의 따스한 햇살과 파란 하늘 그리고 잘 정돈된 세련된 도시풍경을 기대하며 내린 샌프란시스코의 파웰역 광장의 분위기는 내 상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거리의 네온사인이 막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간의 거리풍경은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전봇대 앞마다 노숙자들이 기대 앉아 있었고 코끝을 훅하고 스치는 낯선 냄새는 마리화나임을 하루가 지난 다음 알게 되었다.

좁은 2차선 도로에는 케이블카와 버스, 택시, 승용차들이 어지럽게 흐름을 이어갔다. 어느 호텔 앞에선 시위대인 듯 한 사람들이 페인트 통, 플라스틱 그릇, 입으로 소리 내는 악기들을 두드리고 불어대며 피켓을 들고 호텔 앞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그 인파를 뚫고 간신히 도착한 숙소는 오래된 가구랑 엘리베이터만으로도 꽤 오랜 역사를 지닌 호텔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로비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직원이 체크인을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한쪽 구석엔 LED 벽난로가 진짜 같은 불꽃을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로비 한쪽 구석엔 방문 손님을 위한 간단한 차와 쿠키가 놓여있었다. 차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이국의 맛이 진한 홍차였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긴 비행시간에 지친 몸이 휴식을 요구했다.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리모컨을 들었다. 하지만 TV는 웬일인지 반응이 없었다. 카운터로 전화를 했다. 2분도 안 돼 60은 족히 더 돼 보이는 직원이 올라왔다. TV 앞, 뒷면의 코드를 꼽았다 뺏다 해보기도 하고 리모컨을 살펴보기도 하더니 금세 해결을 해주곤 방을 나갔다. 과도한 친절도 아닌 손님에 대한 절제된 서비스를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찾은 식당은 다운타운가에서 맛 집으로 소문난 집답게 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문 앞에 앉아있는 사람, 출입문에, 또는 테라스에 기대 있는 사람. 계단에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번호표를 받고 테라스 한쪽에서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10분 20분…….이 지나도 우리 번호는 불리지 않았다. 나는 조바심에 딸아이를 재촉했다. 하지만 잘못된 상황은 아무것도 없었다. 40여분이 지나 겨우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식사가 즐거울 리 없었다. 하지만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그 상황에 너무 익숙한 듯 했다. 아니 기다림마저도 즐기는 듯 한 표정들이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는 교통수단이라기 보단 관광용으로 운영을 하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아무 정거장에서 탔다 자기가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리면 되는 것이다. 케이블카 정류장이 표시된 곳에는 영락없이 긴 줄이 서있다. 우리가족은 도심 외곽 구경을 끝내고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기다렸다. 방금 한 대가 지나갔는지 정류장엔 우리 밖에 없었다. 잠시 후 유럽 관광객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녀가 우리 뒤로 줄을 섰고  뒤이어  중국말을 쓰는 여자 두 명이 그 뒤에 줄을 섰다. 줄은 어느새 7~8명으로 길어졌다.

 

 

잠시 후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젊은 부부가 5살 정도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정류장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들은 줄 뒤로가 차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옆으로 서는 것 이었다. 이후로 오는 다른 사람들은 뒤로 계속 이어 줄을 서는데 그 부부는 눈치를 못 챈 건지 아님 알고도 새치기를 하는 것인지 그렇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뜻밖에도 한국 사람들이었다. 케이블카가 도착하자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먼저 올라탔다.

씁쓸한 기분으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영락없이 전봇대마다 노숙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들은 과도하게 구걸을 한다든가 행인에게 위협을 준다든가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호텔 앞 시위대는 행인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 한쪽을 내주고 시위를 했다. 한 도로를 사용하는 케이블카, 자동차들도 각자 적절히 양보하고 차례를 지키며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처음 발을 내딛어 내 눈에 비친 미국의 거리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며 내가 본 것은 그 혼란 속에 내재돼 있는 질서라는 것이었다. 질서가 내재된 혼란, 그것은 언제든 스스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무채색 불빛이 거리를 물들이는 샌프란시스코 거리 인파속으로 아이 손을 잡고 유유히 걸어가던 한국인 젊은 부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소화되지 않은 여행지의 음식처럼 개운치 않은 잔상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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